▲강원도 횡성, 유엔군이 원주 북쪽 안흥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1951. 2. 5.).
NARA
지평리전투
1951년 2월, 중국군의 제4차 공세와 유엔군의 제2차 반격으로 경기도 가평, 강원도 홍천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 형태로 전선이 형성됐다. 1951년 2월 11일의 경기도 지평리전투에서 중국군은 주력을 은밀히 서부전선에서 중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킨 다음 그날 밤부터 제4차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이에 국군 제3사단, 제5사단, 제8사단, 그리고 미 제2사단 제23연대와 프랑스군 1개 대대, 미 제5기갑부대, 영국군 제27연대 등도 동원됐다. 결과적으로 중국군이 주축을 이룬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 연합부대의 건곤일척 대전투에서 중국군은 6.25 전쟁에 개입한 이래 최초의 패배를 맛봤다. 또한 이 전투는 유엔군 측에 '중국군은 머릿수만 많지 별거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 서울 탈환의 계기로 작용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 측은 1. 4후퇴 이후 비로소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번 회는 그 시기의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으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