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이 쉽지 않을만큼 사진이 어두워 아쉽다. 지난해 아버님 제사에 쓰려고 딸과 만들어 본 송편이다. 딸이 송편 빚는 것을 알고 싶어했다. 빚는 동안 즐거웠다.
김현자
사실 아버님 제사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뭣보다 큰아들, 큰형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버리고 그러길 기대하는 어머니와 두 시동생의 일방적이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기분 나빴다. 무시당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간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힘들었던 것들이 떠오르며 오기 같은 것도 일었다. 그런데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남편의 아래와 같은 회한 때문이었다.
"악재를 되풀이해서 겪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 없이 걱정만 끼쳐드려 너무나 죄송하기만 해. 그래서 몇 가지만 올리더라도 제사라도 정성 들여 지내드리고 싶은데…."
남편과 같은 심정이다. 그래서 막상 시댁 식구 누구도 먼저 와서 음식 장만을 도와주지 않은 제사를 3년 지냈고, 다시 앞두고 있음에도 힘들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추석 다음 날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지난날 명절 음식 장만에 허덕일 때면 부러워하고 바라는 것으로 위안 삼았던 친정에서의 추석이나 여행을 이제는 바라지도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차례를 거부했을까.
"기제사는 원래 한번 지내는 것이니 설이나 추석 중 하나에 차례로 기제사를 지내고, 나머지 명절에는 여행을 가든, 친정에 가든 지들끼리 알아서 보내라고 전혀 참견하지 않아.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명절에 모여 밥 한 끼는 꼭 먹어야 한다고 오니 가니 따지는 사람도 있던데, 명절을 저희끼리 보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서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보내라고 놔뒀더니 애들 송편도 사 먹이고 동태전도 부쳐 먹고 그러는 것 같던데?"
기제사를 없애고 명절 차례에 합해 지내는 집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 합리적이다. 그래서 사실 차례상에 수저 하나 더 얹어 아버님 제사를 대신하자는 어머니의 논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 볼까? 고민하긴 했다. 그럼에도 결국 지내지 말자 결정하게 한 것은 차례나 제사를 발복(發福)으로 여기는 어머니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혼자 장만했음에 수고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첫 제사상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정성 들였는데, 어머니가 시할아버지 제사 때 올린 것들을 모두 올린 제사상이었는데도 말이다.
차례나 제사를 당연한 일로 보고 자랐기 때문일까. 차례를 지내지 않아 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우리의 전통 풍속 하나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아쉬움과 섭섭함이 명절 때마다 들곤 한다. 그래도 아직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차례상이다. 어머니가 원하는 차례상은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해 고통을 참고 차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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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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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모르는 조상' 위한 차례상 차리기, 난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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