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에서 식사 중인 이주노동자들가족을 만나러 떠난 친구들과 달리 쉼터에 남은 이주노동자들이 식사하고 있다.
고기복
[쓰레이넛]
쓰레이넛은 남편을 만나러 갔습니다. 남편이 추석 연휴 전후로 엿새 동안 휴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에 쓰레이넛은 남편과 진지하게 논의할 일이 생겼습니다. 사장님이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출국 후 3개월만 지나면 다시 입국해서 또다시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놓치기 아까운 기회입니다.
반면, 귀국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은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아이도 빨리 갖기 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이 설레기도 하지만 다툼이 있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쓰레이넛은 남편과 같이 쉼터에 한 번 오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을 동의해 줄 거라고 은근히 기대하는 모양입니다.
[쏘킴]
쏘킴은 비닐하우스 농장에 가기 전 사슴농장에서 일할 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사슴농장은 사료를 주거나 배설물 치우는 작업을 할 때 큰 힘을 필요로 하므로 남자들도 일 년을 버티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옆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쏘킴이 힘들어 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사슴농장을 그만두기 전에 둘은 친구들 앞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년 전 이야기입니다. 결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남편 회사가 경기 광주로 옮기면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쏘킴 역시 비닐하우스 농장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만남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쏘킴은 농장 휴무가 시작된 다음 날, 쉼터에서 하루 자고 곧바로 광주로 떠났습니다. 남편이 회사 사장님에게 쏘킴이 휴가 기간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도 된다고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남편 동료들은 휴가 기간에 친구를 만나든지 가족을 만나러 다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합니다.
쏘킴은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회사에서 남자 기숙사에 여자를 들이는 경우는 없다는 걸 알기에 쉼터로 왔던 겁니다. 그래서 사장 허락을 얻어낸 남편이 여간 미더운 게 아닙니다. 사장님이 이산가족을 배려한 걸 보면 남편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모양입니다.
[말라이]
말라이는 지난봄에 결혼했으니 한참 깨가 쏟아져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남편과 크게 다툰 이후로 남편이 먼저 찾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남편을 만나고 동생을 만나러 갈 계획을 세우지만, 말라이는 비닐하우스로 가기로 했습니다. 눅눅한 장판 위에서 혼자 자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씩씩거리며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고 합니다. 투닥투닥 심술이 나긴 해도 아직은 신혼입니다. 이번 추석이 남편과 화해할 기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린]
다린은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했던 살림꾼입니다. 살뜰하게 동생을 챙기는 걸 보면 일란성 쌍둥이인데도 언니는 언니입니다. 동생은 제조업 노동자로 입국해서 언니보다 월급은 많지만, 한 번은 임금체불로, 또 한 번은 관리자 폭행 문제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다린은 동생이 혹시나 다시 회사를 옮겨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토·일요일에 쉬는 동생에게 오라 가라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달에 겨우 두 번 쉬는 토요일에 짬을 내서 혈육을 찾는 건 언제나 언니인 다린 몫이었습니다.
이번 추석도 다린은 동생을 찾아갑니다. 공장에 직접 가지 않고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동생 회사에서는 가족이라고 해도 외부에서 누가 찾아오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은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추석 음식도 만들고 가까운 민속촌에도 놀러 갈 계획입니다.
언니가 부담스러운 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