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되박으로 사다먹은 처지에도 불구하고

[운암 김성숙 평전 50회] "내가 자진 표창을 청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등록 2019.09.18 15:26수정 2019.09.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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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표의 김성숙 선생 수형기록표의 김성숙 선생
수형기록표의 김성숙 선생수형기록표의 김성숙 선생(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1964년 1월 2일 목요일
비교적 따스하고 맑음.

피우정 일을 논의하기 위해 조신(早晨)에 정릉으로 배도원 군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장건상 선생님 댁에 들려 신년인사를 하였다. 장 선생은 신년에 82 고령이지만 아직도 정정하시다. 장 선생은 박정권이 소위 독립유공자 표창에서 자기와 나를 배제한 것을 매우 분격하시며 이것은 반드시 밝혀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되었다. 물론 한 개의 역사적 사실인 소위 독립운동자 표창 서열 중에서 우리들의 이름이 제외되었다는 것은 극히 불쾌하고 불공평한 일이지만 박정권이 우리들 혁신인사를 적대시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그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 오히려 맘 편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주석 2)

1964년 1월 7일 화요일
비교적 따뜻하고 맑음.

직일 순옥(順玉) 모(母)와 정봉이가 쌀 한가마를 지고이고 나를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방 한구석에 쌀자루가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광수 부부가 보낸 것이다. 나는 작년 이래 소위 피우정 짓는 바람에 생활이 극도(로) 곤경에 빠져서 아침 저녁꺼리가 간 데 없이 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근일에도 쌀을 되박으로 사다먹게 되던 참인지라 쌀 한가마가 방에 놓인 것을 보니 눈이 번쩍 뜨일 만치 풍족감을 가지게 된다.

우선 한 달 동안은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할 때 내가 소위 나라 일을 한답시고 집안 살림을 돌아보지 못한 관계로 가난한 친척들까지 이리저리 한 폐를 끼치는 것을 생각할 때 스스로 미안한 맘을 금할 길이 없다. (주석 3)

1964년 1월 17일 금요일
따뜻하고 맑음.


함 목수는 일찍부터 일한다. 참 성실한 사람이다. 이처럼 성실한 사람이지만 그는 지금 극도의 생활고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서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밥을 굶을 지경이라니 이것은 분명히 이 사회제도가 잘못된 까닭이리라. 나는 함 목수를 볼 때마다 그 성실성에 감복된다.

하오에는 성동서 장석환 형사가 우대수 형사를 대동하고 내방하였다. 장 형사는 5ㆍ16 후 내가 성동서에 구속되었을 때 나를 직접 취조한 바 있고 그전부터 나를 감시해오든 형사인데 사람됨이 매우 얌전하고 맘씨도 선량하다. 우 형사가 이 동리를 담당하였다고 하며 우는 구익균 동지를 만나고저 한다. 또 상부에는 무슨 명령이 있는 모양이다.


저녁에는 배도원에게 편지를 쓰다.
종일 재가독서. (주석 4)

1964년 1월 24일
따뜻하고 맑음.

일기가 계속 온난하다. 금동(今冬)에는 한강이 얼어보지 못하고 지나가게 될 것 같다. 정부에서는 3ㆍ1절에 또 독립유공자 표창을 한다고 하는데 여러 동지들이 나도 이력서를 정부에 제출해서 표창을 받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나의 목전 곤란한 생활정형은 그렇게라도 해서 생활비를 타먹게 되면 좀 나아질 것이로되 나 자신의 자존심과 인격적 긍지로서는 차라리 곤란을 받을지언정 그런 체면 없는 짓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에서 자진조사해서 표창한다면 그것은 역시 체면상 거부하기 곤란할 것이지만 내가 자진 표창을 청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이 뜻은 처도 동감이다. 처가 고난을 무릅쓰고 살더라도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탄복했다. (주석 5)


주석
2> 앞의 책, 39쪽.
3> 앞의 책, 42쪽.
4> 앞의 책, 48쪽.
5> 앞의 책, 5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운암_김성숙_평전 #김성숙_혁명일기 #독립유공자표창 #김성숙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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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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