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집에서
최종규
돼지 (숲노래 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보들보들한 털에, 곧은 등줄기에, 폭신한 몸에, 똑부러지고 다부진 눈빛에, 씩씩하며 날렵한 몸짓인 돼지는, 해바라기랑 숲놀이랑 흙씻기랑 풀잎 먹기를 즐겨요. 구정물이나 찌꺼기를 즐기는 돼지가 아니라, 더없이 깔끔하면서 정갈한 돼지인데, 사람들이 잘못 길들여요.
다시 말해서 '고깃감'으로 태어난 돼지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이웃이에요. 저는 이런 돼지, 고깃감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돼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이 있기에, 이를 동시로 그려 보았습니다. 마을책집 책먹는 돼지에 이 글자락을 드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