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화

이영 지음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를 읽고서

등록 2019.09.05 11:08수정 2019.09.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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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쓴 우화집

한 달쯤 전 아침에 일어난 뒤 습관대로 손 전화를 열자 몇 개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어느 택배 기사의 메시지로 늦은 밤에 택배 물건을 문 앞에 두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즈음에는 배달 물량이 많은 관계로 늦은 밤까지, 심지어는 다음날 이른 아침까지도 배달하는 모양이다.


그 택배는 다름아닌,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 우화'(Fables for Grandchildren)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글 이영 / 그림 우나경'으로, 저자 이영(Young Lee, MBA)은 꼭 40년 전 교실에서 만났던 제자였다.

그는 미국 시키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어카운팅 디렉터(Director of Accounting and Administration)로 봉직하고 있는, 여섯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살면서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를, 때때로 긴 손 편지를 이따금 보내주는 제자였다. 그래서 나는 '가연(佳緣)'이라는 연재에 그를 소개한 바도 있었다.

[관련기사 : 성자가 된 어느 제자의 이야기]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겉 표지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겉 표지꿈과 비전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우화다. 글 반, 그림 반으로 모두 열한 가지의 우화를 담고 있었다. 이런 우화는 한꺼번에 읽기보다는 여러 날을 두고 하나하나 되삭임질 하면서 읽는 게 좋다. 게다가 이 여름 나는 새 작품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 작품의 초고를 며칠 전에 탈고한 뒤부터 틈틈이 책을 편 뒤 오늘 아침에야 이 우화집을 다 읽었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그때는 6.25전쟁 직후로 책이 무척 귀했다. 심지어 교과서마저 없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시절이다 보니 대부분 시골 어린이들은 사실 우화나 동화 같은 책은 읽지 못하고 자랐다.

나는 어른이 된 다음 뒤늦게 이솝우화나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었다. 나는 그때마다 이런 책을 어린 시절에 읽었더라면 내 인생이 훨씬 달라졌을 거라는 그런 아쉬움이 엄청 컸었다.


사실 좋은 우화나 동화는 아무나 쓸 수가 없다. 최소한 쉰은 넘긴 작가, 인생의 산전수전 및 공중전까지 다 치른 이만이 쓸 수 있을 테다. 내가 아는 이영 박사는 한국에서 어렵게 대학교를 마친 다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30여 년 시카고에서 대학생 선교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어린이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설교자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나는 그의 우화집을 읽으면서 여기에 실린 이 우화들은 저자의 그동안 삶이 농축된 이야기들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 우화들은 더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의 특징은 한글과 영문으로 이야기를 쓴 뒤 거기에 그림을 곁들여 국내 어린이뿐 아니라, 세계 각지 동포들의 자녀들에게도 들려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아마도 언젠가 이 책은 아주 귀한 하나님의 복음과 같은 우화로 자리매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 우화를 읽는 내내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낫다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한때 그를 가르쳤다는 게 이렇게 뿌듯할 수가.

서론이 길었다. 그의 책에 실린 열한 가지 우화 가운데 맨 마지막 우화인 '나뭇잎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열하나 나뭇잎 이야기(Story of Leaves)

땅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뭇잎들

아름다운 나뭇잎들을 지닌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뭇잎은 서로 얘기했습니다.
자기들의 꿈과 소원들을 얘기했습니다.
모두가 땅을 내려다보며
그들은 저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첫 번째 나뭇잎을 따서는
책갈피 속에 간직했습니다.
첫 번째 나뭇잎은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나뭇잎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것들을 보고 즐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바람이 심하게 불 때,
두 번째 나뭇잎은 힘차게 날아서
달리는 자동차 지붕에 내려앉았습니다.


"야호, 신난다!"
두 번째 나뭇잎은 넓은 세상을 돌아다닐 일이
너무나 흥분되었습니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두 번째 나뭇잎은 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으로 차를 붙들었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나뭇잎
  
세 번째 나뭇잎도 땅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붙잡았습니다.

눈이 내립니다.
하지만, 세 번째 나뭇잎은 여전히 나무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
세 번째 나뭇잎이 거듭 다짐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어와 세 번째 나뭇잎을
훌쩍 지붕 위로 올려버렸습니다.
세 번째 나뭇잎은 땅에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붕 위에 갇혀서 꼼짝달싹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나뭇잎이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땅은 더럽고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저곳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네 번째 나뭇잎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땅에 있는 다른 나뭇잎들이 말했습니다.
"친구야, 걱정하지 말고 이리로 내려와."

 
 저자 이영 부부
저자 이영 부부이영
 
자기를 통해 새로 피어난 많은 나뭇잎

나무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아이야, 땅에 떨어져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마침내, 네 번째 나뭇잎이 용기를 내어 땅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땅은 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따뜻하고 푹신했습니다.
땅은 네 번째 나뭇잎을 환영했습니다.
그곳에서 네 번째 나뭇잎은 많은 친구도 만났습니다.


네 번째 나뭇잎은 자기 몸이 점점 땅속으로
파묻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날이 갈수록, 네 번째 나뭇잎의 모양이 변해갔습니다.
"아, 이제 내 마지막이 가까워졌나 보다."
네 번째 나뭇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띵 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뿌리의 목소리였습니다.

뿌리가 말했습니다.
"새 생명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해."
그리고 뿌리는 네 번째 나뭇잎을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곧 나무는 다시 아름다운 나뭇잎들을
많이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네 번째 나뭇잎은 자기를 통해 새로 피어난
많은 새로운 나뭇잎을 보았습니다.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 우화 그림책 Fables for Grandchildren

이영 (지은이),
꿈과비전, 2019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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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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