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축제 때 재현한 해상전투. 전라남도는 명량대첩축제 때마다 해상전투를 재현, 관람객들에게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이돈삼
때는 1597년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백의종군하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전라도 일원에서 조선수군을 재건한 직후였다. 조정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수군 철폐령까지 내려지는 악조건 속에서다.
이순신 장군은 장수와 병사들을 모아놓고 역설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일부당경 족구천부, 一夫當經 足懼千夫)'.
이순신 장군의 공격 명령과 함께 조선수군 함대가 적선으로 돌진하며 포를 쏴 올렸다. 군관들은 함선 위에 줄지어 서서 화살을 쏘아댔다. 조선수군의 일제 공격에 일본군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겁 없이 다가온 일본군들이 당황해하더니 어찌할 줄을 몰랐다. 조선수군은 그 틈을 이용해 일본군의 배에 불을 붙였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간조였던 바닷물이 만조로 역류했다. 바닷물의 흐름이 조선수군에 유리해졌다. 승기를 잡은 조선수군은 크고 작은 화살을 모두 적선으로 쏘아댔다. 일본군이 혼비백산했다. 일본군이 타고 있던 배가 물속으로 속속 가라앉았다. 사망자가 수천을 헤아렸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배들은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선수군의 승전가가 높이 울려 퍼졌다.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잃은 제해권을 두 달여 만에 다시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짜릿한 대역전승, 13척으로 일군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