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송환반대'가 적힌 손피켓을 든 집회 주최자 브라이언 첸(가명)
오태양
첫 연설자로 나선 브라이언 첸(27세, 가명)은 "오늘 행사는 전 세계 홍콩인의 연대집회로, 서울·도쿄·뉴욕·파리 등 전 세계 31개 도시에서 동시 개최되고 있다"며 집회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현재 한국 유학생으로, 지난 6월 9일 100만 홍콩인들의 집회 현장에 함께했노라고 소개했다. 이어 "현재 민주화 시위로 6월 9일 이후 체포된 시민이 1000여 명에 달하고, 그중 150여 명이 감금상태에 있으며, 이 중에는 심지어 청소년도 다수 있다"며 행정당국을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그는 "홍콩 시민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것 하나도 빼거나 양보할 수 없다"며 그 내용을 하나씩 소개해 주었다. ▲ 송환조례 완전 철폐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경찰 강경진압에 관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 행정장관 보통선거(직선제) 실시가 그것이다.
이는 지난 6월 9일 집회 이후 진행된 홍콩 행정당국의 무차별적인 시위 진압과 불법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반인권 조치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홍콩 시민의 정당한 권리실현을 위한 요구였다. 현재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의 이 같은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다른 홍콩 여성이 마이크 앞에 섰다. 그녀는 본인의 실명조차 언급하기를 꺼려했으며,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한국과 홍콩을 자주 오가며 여행과 일을 한다는 그녀는 발언 시작부터 울먹였다. 그리고 자신이 홍콩에서 목격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모욕적인 언행, 성추행, 구타와 폭행, 위협적인 진압무기 사용 등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너무나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홍콩의 이 안타까운 소식을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이 널리 알려주세요."
그녀는 끝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홍콩 지지 영상에 홍콩 시민 1000명이 댓글 단 사연
이날 집회에는 한국인의 지지 발언도 소개되었다. 청년정당 미래당(우리미래) 당원들은 '프리 홍콩-데모크라시 나우' '홍콩시민의 민주주의와 평화시위를 지지합니다'라는 손피켓을 들고 함께했다. 필자도 이 자리에서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저희가 제작한 홍콩시위 응원 영상에 홍콩시민과 청년들이 쓴 1000개의 댓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더 알려주세요' '포기하지 않아요'라는 댓글들에서 절박함이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 위에는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고, 오늘 이렇게 홍콩시민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집회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희생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홍콩의 민주주의는 본질이 같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홍콩은 비록 섬과 반도지만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시민들이 홍콩을 지켜보고 있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함께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속성은 보편성에 있다. 국가, 인종, 성별, 세대, 종교, 문화적 경계와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본질과 지향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홍콩 시위의 본질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다.
지난 100년간 홍콩에 뿌리내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토양에서 태어난 홍콩의 10대, 20대에게 '중국화'란 곧 '검열과 통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홍콩시위 현장에는 급기야 오성홍기와 하켄크로이츠(나치 문양)를 합성한 '차이나치'(Chinazi) 깃발마저 등장했다.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 위협과 홍콩 통제를 히틀러의 나치시대에 비꼬는 것인데, 홍콩 시민들의 분노의 깊이를 추측해 볼만 하다.
왜 한국의 청년들은 홍콩 시위를 응원하나
홍콩 시위의 주역인 데모시스토(우산혁명을 이끌었던 학생 운동가들이 창당한 정당)처럼, 한국의 청년정당에서 미디어 사업을 담당하는 최지선(29)씨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뛰어든 청년세대에게 깊은 연대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5월 대만을 방문해, 마찬가지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시대역량 정당을 탐방하고, 홍콩과 대만에서 활동 중인 20대 독립언론인 브라이언 호이(Brian Hioe)와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브라이언은 "한국, 대만, 홍콩, 일본의 4개의 동아시아 국가는 매우 역동적인 민주주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곧 홍콩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녀와 동료의 제안으로 미래당 동료들과 함께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청년들의 연대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또, 영상에 참여한 청년들은 연대의 상징으로 한쪽 눈을 흰색 안대로 가렸다. 최근 시위 도중 경찰이 쏜 고무탄 때문에 한쪽 눈이 실명된 홍콩 여성의 아픔을 공유하고, 평화시위가 보장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의미였다. 아래는 영상을 통해 전한 메시지다.
"우리는 진심으로 홍콩의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외칩니다. 홍콩 시민들에게 폭력을 쓰지 마십시오.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홍콩의 미래는 홍콩시민의 것 입니다."
(We are genuinely concerned about the lives and the safety of the citizens of Hong Kong. So we shout out to the world. Don't use violence against Hong Kong citizens. Please listen to the voices of Hong Kong citizens. The future of Hong Kong belongs to the people of Hong Kong.)
용산역 광장에 울려퍼진 '레 미제라블' 노래
해거름이 되자 광장이 어둑해졌다. 집회를 시작할 때 참가자가 20여 명 남짓이었는데 이후 홍콩인, 한국인, 기자와 유튜버 등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집회 주최자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노래를 시작했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테마곡 중 하나로, 일명 '민중의 노래'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였다.
이 노래는 2014년 우산혁명 당시 비폭력 평화시위를 이끌던 청년 시위대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대표적인 합창곡이 되었다. 가사를 음미해 보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모두 함께 싸우자 누가 나와 함께 하나
저 너머 장벽 지나서 오래 누릴 세상
싸우리라 싸우자 자유가 기다린다"
노래를 함께 부르는 홍콩 청년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는 가사가 지금 홍콩 시민들의 분노와 절박함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영국으로부터 150여 년 간 식민 지배를 겪은 뒤, 1997년 7월 2일 영국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에게 다시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사회주의 국가로 귀속되는 일은 불안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일국양제 체제를 50년간 유지하겠다'는 약속에 그나마 안심했으나, 그 약속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이슈를 매개로 폭발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라고 자부하는 홍콩의 10대, 20대가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요 참가자와 지도부가 청년과 청소년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