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청문회'가 27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가운데,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 등 증인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권우성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제2의 참사' 방지를 위해 재개정된 관련 법안을 무력화시키는 정책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경총은 정부에 화학물질 규제 개선 건의과제 27건을 제출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등 화학물질 규제법이 선진국보다 과도한 수준으로 강화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확장되면서 한일 양국 간 무역 거래에 큰 차질이 예상돼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총은 "일본 수출규제로 확인된 우리나라 소재 부품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해야 하는 시기"라며 "기업 경쟁력의 고도화 및 선진화를 위한 제반 환경을 조성해야 하므로 화학물질 등록·평가 및 관리 분야의 규제개선이 적시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경총의 이런 건의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때문에 산업계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교훈을 잊고 반성도 안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총의 3차례 건의문
정부는 지난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2012년 구미 불화수소산 사고 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고, 화학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지난 2013년 화평법과 화관법을 제·개정했다. 당시 정부는 관계부처와 산업계, 시민사회,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등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쳤다.
지난 2013년 제정된 화평법은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톤 이상 제조·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같은 해 화관법은 기존의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전면 개정해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 기준을 79개에서 413개로 늘린 것을 주요 내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경총은 지난 2013년 화평법과 화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곧바로 정부에 건의문을 제출했다. 당시 경총은 "화평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기업들은 제조·수입량에 관계없이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며 "등록 시 필요한 제출 자료의 준비에 상당한 시간(평균 8개월~11개월)과 비용(물질당 평균 5700만 원~1억 1200만 원)이 소요돼 행정적·경제적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은 2017년에도 정부에 정책건의서를 제출했다. 2016년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국정조사가 끝난 뒤였다. 당시 경총은 기업의 행정적·경제적 부담을 내세워 정부의 화평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현행법상 신고대상인 유해화학물질(800여 종) 수준은 유럽(173종)에 비해 4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법 개정을 통해 신고 대상 물질을 더욱 확대하는 것은 유럽 등 선진 화학물질 관리제도 시행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규제"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경총 등 산업계가 지난 6년간 화평법과 화관법이 제·개정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해 기업의 입장을 반영했는 데도, 약속을 깨고 안전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라며 "산업계가 가습기살균체 참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교훈도 잊은 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딴죽만 걸고 있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