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천년 고찰의 돌틈 사이로 해마다 풀 한 포기, 꽃 한 포기가 피어난다.
이현숙
까마득한 시절에 친구와 떠난 여행에서 마침 절에 다달았을 때였다.
유명한 절이었는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조용하고 정갈해서 무척 마음에 끌렸다. 사찰 가까이 다가가니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친구랑 가만히 서 있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신발을 벗고 들어가 절을 올렸다. 무슨 마음에서 절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알 수 없는 것들이 마음 가득 차오르는 듯했었다.
그리고 절 밖으로 나오면서 잡념을 떨친 개운한 기분은 무엇인지. 산길을 내려오면서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던 것은 절을 하면서 내가 빌었던 소원이 꼭 이루어질 것 같은 철없는 확신 때문이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이다. 시간이 흐른 후 내게 그렇게 각인된 적멸보궁은 허술하기만 한 내 마음에 영적인 기운을 주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땀범벅이 되어서 들어섰던 사찰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요즘 내게 그런 시간이 간절하기 때문이 아닐지. 그 시절의 친구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적멸보궁은 착하고 이쁘던 내 친구와 그 시절이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스무 살 초반의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적멸보궁은 지금도 감사와 염원을 올리는 곳이란 생각을 한다. 아들아이가 군대 가기 전의 강원도 가족여행에서도 굳이 최북단 마을 끄트머리 고성에 있는 건봉사의 적멸보궁에 들렀었다.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의 기도가 전해질 것만 같은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절이다. 물론 아들은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잘 마쳤고 요즘도 난 가끔 적멸보궁이 있는 절에 가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