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거리(구 개척리)에서 러시아 소녀들과의 K-Pop 합동 공연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거리(구 개척리)에서 러시아 소녀들과의 K-Pop 합동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상직
러시아에서는 조명희와 김알렉산드리아, 최재형의 유산을 접하고 고려인 문화센터에 기록된 고려인의 디아스포라(Diaspora)의 아픈 역사를 다시 확인했으며 고려인 민족학교를 방문해 고려인 학생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고 신한촌 기념비에 미리 준비한 헌화와 헌시를 했으며, 특히 연해주 이주 초기 동포들의 정착터였던 구 개척리(현재 아르바트 거리)에서 K-Pop을 비롯해 부채춤과 태권무 등 학생들이 준비한 한국 문화를 펼친 거리 공연을 통해 우리들 뿐만 아니라 푸른 눈동자와 금발 외국인들에게까지 가슴 벅찬 시간들을 만들어주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이 여정 초반 두만강을 따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지도 어플로 경로를 살피던 나는 불현듯 오래전에 접했던 함석헌 선생의 '씨알'을 떠올렸는데, 이후에도 계속 그 말에 붙들릴 수밖에 없었다. 고난의 역사를 관통한 우리들 기층 민중을 씨알이라 부르자며 선생이 말 한 바, 우리 씨알들이 겪은 고난의 역사가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했으나, 책을 접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내 어리숙한 이해는 그 '뜻'에 다다르지 못했으며, 또 그 '뜻'을 이룬다 해서 씨알의 개별적 고난에 응당한 보상이 되기나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시했었던 생각까지 뒤를 따랐다.
지금 동행연수단이 뒤따르는 길은 100여년 전 우리 땅에서 간도와 연해주로 이어지는 씨알의 고난의 길이다. 그런데 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이, 차창 유리에 기대어 잠든 저 아이들에게, 또 개별적인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투영되고 복원될 것인가?
씨알이 민중이라면, 씨알들이 가장 먼저 '씨'로써 '알'을 삼고자 하는 대상은 결국 우리의 아이들일 것이다. 말하자면 아이들은 '씨알의 씨알' 인 셈이다. 요사이 대통령도 언급했다는 <90년생이 온다>는 책이 화제라고 한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90년대 출생 세대의 특성으로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를 제시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2000년대 출생인 우리 중학생들을 축약한 형용은 '더 간단하거나', '더 재미있거나', '더 정직하거나'가 아닐까?
복잡한 알고리즘은 AI가 대신할 수 있고, 재미가 없으면 어떤 의미조차 없으며, '핵인싸'가 되기 위해서 '까발려져야' 하는 세대들. '중2병' 또는 '급식충'과 같은 비하의 표현도 재미의 소재가 된다면 스스로 수백 번 수용하고 대거리의 소재로 삼는 아이들.
이 새로운 '씨알' 세대들은 역사 또한 그렇게 둥쳐버린다. 위에서 정리한 7박 8일의 여정 동안 솔직히 나를 비롯한 동행연수의 지도 교사들은 밤마다 협의회를 하며 속을 태웠다. 긴 시간 사전 학습과 다양한 체험으로 연수를 준비한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선행학습을 많이 했던 여정들을 허투로 낭비하거나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간단'과 '재미'와 '정직'을 담보할 연수 방법이 막상 걸음 닫는 현장과는 동떨어졌던 것이다. '간단'은 커녕 복잡한 변곡으로 이어짐을 찾고, '재미'와 동떨어진 일들의 사전(事前)과 사후(事後)의 '의미'를 해석하며, '정직' 너머의 '깊이'에서 솎아내야만 만난다는 '역사'를 이 새로운 '씨알'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한 나의 '꼰대'적인 걱정에 반전이 생겼다. 그 반전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간단하게', '재미있게', '정직하게'. 아이들은 역사를 새롭게 소화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지식인과 기성의 세대가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젠체하여 역사에 그어놓은 밑줄을 강요하다시피, 추상에 가까운 '민족애'와 잡념에 가까운 '인간애'를 공허한 교과서로 들이밀 때, 아이들은 사물함 속에 교과서를 기꺼이 쳐박아 버렸던 것이다.
아이들은 사물함 밖으로 뛰쳐나왔다. 교과서의 밑줄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벅찼다. 내가 역사 의식 따위로 개조?하려던 아이들이 거꾸로 역사의 폐허 위에 어슬렁거리던 나를 개조하고 있었다.
연해주 초기 한민족 정착민들의 고난의 흔적이 자취를 감춘 그 곳-아르바트 거리에서 선열의 아픔(의미)을 되새기는 묵념이나 또 다른 강의를 진행했다면, 기념 사진을 더한 밋밋한 교과서 한 장을 더 추가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