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과 똑같은 원단이면서도 허술하게 봉제하는 여성복의 고질적인 문제도 개선하고 싶었다.
신나리
내가 해방에 가까운 자유로움을 느낀 건 '노브라 티셔츠' 덕이다. 브래지어 없이도 유두를 가릴 수 있도록, 가슴 곡률에 맞춘 얇은 패드가 내장된 옷이다.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는 노브라 티셔츠를 제작한 주체이자 내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이다. 나는 이곳에서 조합원들과 지난 1년간 노브라 티셔츠를 개발했다.
롤링다이스는 전자책을 제작하고 강연을 기획하는 공동체였다. 구성원들은 본업은 따로 유지한 채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면 의기투합하며 일을 해나간다.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일 가운데 '의류 제조업'과 교집합을 이루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단 시장과 봉제 공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수백 벌의 옷을 포장하고 배송하며 CS(소비자 민원)를 처리한다.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까.
아스팔트의 열기에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던 지난해 여름이었다. 롤링다이스 월례회의에 모인 여섯 명의 조합원들은 회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하필 그날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었다.
더위에 녹초가 된 우리는 푸념을 털어놓았다.
"브라 차는 게 제일 싫어요."
"나는 반창고 붙이고 다녀요."
"여름 옷은 얇아서 노브라도 못해."
나는 이때다 싶어 의기양양하게 말을 꺼냈다.
"저는 노브라로 다니는 방법을 찾았어요."
당시 나는 브라를 안 입고 다닐 방법을 강구한 끝에, 브래지어 대신 브라탑의 앞부분을 오려 티셔츠에 바느질해 입고 다녔다. 조악하긴 했으나 꼭지를 가려주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높았다(관련기사 :
노브라 유목민이 찾은 천국... 와 이건 진짜다).
조합원들은 나만의 '신박한' 해법을 애써 상상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의아해하는 듯했지만 이내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이거 다음 프로젝트로 진행하면 어때요?"
누군가 제안했다. 다음 회의 때는 각자의 노브라티를 직접 만들어보며 가능성을 타진했다. 조합원들은 만장일치로 프로젝트 시작에 동의했다. '노브라옷'의 필요성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지점이었다.
한 연예인의 노브라 소식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사진을 찾아보고, 얼마나 티가 나는지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는 사회다. 간혹 여성이 노브라로 다니건 말건 관심 없다는 댓글이 달리는데, 정말 성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운 문제라면 '노브라 티셔츠'라는 검색어는 왜 성인인증까지 받아야 할까.
이런 세상에서 내 몸에 자유를 주면서도 타인의 무례한 시선도 받지 않는 옷. 브래지어를 벗더라도 팔짱을 끼거나 어깨를 움츠리며 나의 행동을 위축하지 않아도 되는 옷. 편안하면서도 안전한 옷은 우리 모두에게 간절했다.
'노브라티 프로젝트'의 목표는 확실했다. 상품 가능성과 브랜드 콘셉트를 갖춘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자. 가슴을 조이는 밴드를 없애자. 앞부분의 유두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가리되 답답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시원하고 얇아야 한다.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딱 붙지 않으면서도 벙벙한 홈웨어에서 탈피하자. 외출복으로도 손색이 없도록.
처음 만난 제조업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