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통을 메고 잠수하는 스쿠버 다이빙.
최늘샘
여행자와 다이버들의 블랙홀, 다합
교육비도 다이빙 비용도 세계 최저가인 다합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배낭을 풀고 다이버가 되는, 다이버의 고향이다.
5일 동안 스쿠버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딴 뒤, 블루홀, 동굴과 협곡, 곰치와 뱀장어 정원 등 신비스러운 바다 곳곳에 들어갔다. 별다를 것 없었던 다합 바다의 첫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공기통을 메고 바닷속 수십 미터 아래를 헤엄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였다.
스쿠버 다이빙 두 번에 350파운드(25000원). 최저가라지만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주요 지점들에 한 번씩 잠수하고 나니 비용이 들지 않는 스노쿨링과 프리 다이빙에 관심이 갔다. 많은 다이버들이 스쿠버 다이빙 다음으로 프리 다이빙에 도전했다. 공기통 없이, 제주도 해녀처럼 숨을 참고 수 십 미터를 잠수하는 프리 다이빙은 스쿠버 다이빙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자격증 교육비가 부담스러워서 이미 교육을 받은 룸메이트들에게 호흡법을 배우고 흉내만 내 보았는데도, 물 표면에서 헤엄칠 때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제대로 배우지 않은 다이빙으로 인한 사고가 잦다고 하니 깊은 잠수는 절대 주의해야 한다. 다이버들은 "안따, 즐따!" 하고 인사한다.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의 줄임말이다.
오리발을 빌려 신고 물밑을 질주하면 찬란한 산호와 물고기들이 눈가와 무릎을 스쳐갔다. 바닷속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기분이다. 물밑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또 얼마나 신비롭게 일렁이는지. 그래서 '다합인'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매일같이 바다에 들어갔다.
조금 무료해진 여행자들은 인원을 모아 밤낚시를 가거나, 베두인족의 사막 카페에 가서 별을 바라보고 이집션 힙합에 맞춰 춤을 췄다. 다합 단톡방에는 명상, 주짓수, 수공예 등 다양한 모임 소식이 올라왔다.
우리는 바다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했다. 담벼락 아래 달빛이 쏟아질 때면, 비행청소년마냥 쭈그려 앉아 이집트산 담배를 나누어 폈다. 그러다 별똥별처럼 한 순간, 사랑에 빠지는 청춘들도 많았다.
나도 바닷속에서 마주친 인어같은 한 사람을 사랑했지만, 그에게 나는 사랑이 아니었다. 내게 사랑은 왜 그리도 쓴 걸까. 해질녘 명상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낭만파 룸메이트 진수가 말했다.
"형, 짧은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요?"
사막의 끝, 푸른 바다 다합. 여행자들의 우정과 샛별같은 사랑이 그 바다를 더 아름답게 했다. 그렇게 나도 다합의 블랙홀에 빠지고 말았다. 한 달이 지나고, 막내 동현이는 아프리카 추장의 딸을 만날 거라며 에티오피아로 날아갔다. 정재와 동언이는 보물선을 찾아 터키로 갔으며, 진수는 진리를 찾겠다며 비행기 티켓을 찢었다. 다합은 아마도, 가장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티켓을 찢고 눌러앉는 바다일 것이다.
나 역시 해질 무렵 바람이 밀려올 때마다 다합에 머물고 싶었으나, 이미 불법체류 기간이 한 달을 넘겼다. 룸메이트들과 이웃 친구들이 정류장까지 걸어 와 나를 배웅해주었다. 여행자들에게 악수는 조금 성에 차지 않는다. 팔을 벌려 한 명 한 명 꼭 껴안고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어느덧 '다합 가족'이 되어 있었다.
불법체류자의 출애굽기
수단 대사관, 이집트 불법 체류 때문에 비자가 나오지 않을까봐 조마조마 했다. 네 시간 동안 서류, 도장, 지불, 제출 창구를 오가며 줄을 선 뒤 접수를 마쳤고 다음날 무사히 비자를 받았다. 50달러던 비자비는 올해 150달러로 올랐다. 내가 방문한 52개국 중 가장 비싼 가격이었지만 에티오피아로 가는 비행기보다는 저렴했다.
6월 3일 수단에서는 민주 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한 군부의 발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사관에서 만난 수단 사람은 정권이 바뀌고 있다며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얘기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수단 입국을 만류했다.
찾아보니 수단은 여행금지국가가 아니었고, 단지 미국이 지정한 적대국가 중 하나로, 수단 여행 이후 미국 방문 시 별도 비자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적대국가라는 것이 여행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불확실한 공포나 고정관념 때문에 횡단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열여섯 시간 기차를 타고 이집트를 종단해 아스완에 닿았다. 스무 시간 동안 나일강을 항해해 수단으로 가는 페리는 일요일에만 출발했다. 미등록 체류자 신세를 탈출하는 마지막 단계, 출국 검사가 남았다. 육로 국경보다는 나일강 뱃길의 여권 검사가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통한 걸까, 항구 통제소에는 여권을 전산처리하는 컴퓨터가 없었다. 경찰은 입국 장소만 확인했고 날짜를 문제 삼지 않았다. 천만다행히 나는 비자연장비도 불법체류 벌금도 내지 않고 출애굽에 성공했다.
3300년 전 애굽을 탈출한 모세가 떠올랐다. 나에게는 그같은 명분이 전혀 없지만, 어리바리 불법체류자가 된 내내 무사 탈출을 바라마지 않았다. 인도로 가는 길에 승려 혜초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길도 혜초의 길도 갈 수 있는 시대. 그리고 저마다의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시대. 관광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 출국자는 2870만 명이다. 세상은 좋아진 걸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알려진 대륙, 아프리카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길. 나일강 물길이 불법체류자에게도 열리기를 기도하며, 수단사람들과 함께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