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이후
"나는 이 (질병의) 왕국의 지형을 둘러싸고 날조되는 가혹하면서도 감상적인 환상을 묘사해 보고 싶다."
수전은 '질병의 왕국으로 이주해" 와 실제 왕국 안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그 왕국을 구름처럼 둘러싼 다양한 이미지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내리는 해석들을 보고 들으며 그것의 '날조되는 가혹하면서도 감상적인 환상'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결심한다.
치명적인 질병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한다. 정복할 수 없으며 그것의 정체 또한 알 수 없는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이 공포심은 죽음을 매개로 질병을 향하게 된다. 질병의 속성은 악한 것이 되며 이는 곧 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도덕적 판결로 이어진다. 무지와 감상적 공포로부터 비롯되는 반이성적 추론이 질병의 은유를 가혹한 것으로 만든다.
"19세기 내내 질병의 은유는 훨씬 악랄해지고, 불합리해지고, 선동적이 되어갔다. 게다가, 질병의 은유는 질병을 비난하는 상황을 환기시키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다. 건강의 일부이거나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한 질병은 '부자연스러운' 모든 것의 동의어가 됐다."
수전은 19세기에 창궐한 결핵과 그 이후의 암을 소재로 질병의 은유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다양한 문헌을 추적한 결과 질병의 은유는 시간을 타고 점점 극단적이고 잔인한 것이 되어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질병은 그 자체로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갔고, 따라서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분명히 그 질병을 야기할 만한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 여겨졌다. 질병을 '신의 심판'으로 간주한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러한 관념적 태도와 혼합되어 환자들의 질병은 잘못된 생활 습관 혹은 도덕적 결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질병을 둘러싼 현대의 은유들은 모두 비열한 언사뿐이다.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을 끊임없이 악의 축도처럼 암시해 주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실제 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뭔가 도움을 받는 것은 전혀 아니다. (…) 암의 은유는 특히 형편없다. 이 은유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려는 자극이며, 광신이 아니라면 독선으로의 초대이다."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다가갔다면 치료가 더 수월하고 완치가 더 빨리 이뤄졌을 것을, 켜켜이 쌓인 은유적 이미지들은 질병에 대한 신화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선명한 시야를 흐리고 뿌옇게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질병과 환자들의 모습을 어둡고 사악한 것으로 둔갑시켰는데 이 형편없는 은유적 이미지들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많은 복잡한 사실들을 단순화시켰다. 이러한 단순화는 그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일종의 독선인 것이다.
수전 손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은유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거나 끌어들어오는 은유에는 반드시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훔볼트(Humbolt)는 언어 결정론을 말하며 언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 세계관 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은유는 우리 언어 활동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다양한 개념이 은유의 도움을 받아 우리 머릿속에 더 단순하고 쉬운 형태로 저장된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면 은유는 그 지배를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일 것이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가 위험한 이유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다양한 질병이 존재하고 여전히 그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들도 많다. 우리가 질병을 바라보고 환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그들의 병을 더 악화시키거나 완치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은유로서의 질병 - 이후 오퍼스 0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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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 해, 다른 이들의 치열함을 흘긋거리는 중입니다. 언젠가 나의 한 줄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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