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다니던 싱가포르의 난양공대(NTU). 싱가포르 여행 중 촬영한 사진이다.
김용석
치열하고 간절한 노력과 희생,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으로 점철된 이야기들, 한국인들에게도 아주 익숙한 이야기들이 싱가포르 밖으로는 성공 신화로, 안으로는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가슴 아픈 사연들로 읽혀지고 있다.
급속한 발전을 이룬 아시아 여느 다른 국가나 똑같이 싱가포르도 사회보장시스템이 취약하여 국민 모두가 자기 안위와 궁극적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작은 영토에 필연적인 부족한 자원은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다. 가까운 과거에 맛보았던 성공 경험은 싱가포르 국민들을 멈추지 않고 달리도록 자극하는데 다른 여러 조건과 더불어 이것은 그들의 행복의 조건과는 관련이 없다. 이와 같은 경쟁 시스템 아래에서 정직하고 건설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여자친구는 싱가포르인으로서, 자기 나라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갖는다. 하우스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들은 프랑스에 대해, 일본 친구들은 일본에 대해, 그리고 대만 친구나 이탈리아 친구도, 이 모두가 자기 나라에 대해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일본에서의 삶에 질려 한국에서 2년째 체류하며 일본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일본인 친구를 통해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어린 시절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 정도 한국을 방문하며 "난 한국이 가장 좋아"라고 말하는 프랑스 친구를 통해 유럽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는 문화적 열등감과 낭만적 동경심에 대해 성찰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인들 상당수가 한국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면, 자연스레 멀리 있어 '덜 선명해 보이는' 장소들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내가 만난 일본인 친구도 그랬고, 프랑스 친구도 그랬다. 다 그렇다.
어쩌면 이미 잘 알아 예상되는 것들에 대해 경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한 예측이 쉽다는 것은 반대로 상대방이 내게 갖는 기대의 유형 또한 일정하며 내가 자유로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이 그렇게 넓지 않다는 것이다. 그 좁은 선택의 공간 속에서 우리 모두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내며 부여 받은 역할과 규범들이 일본에 가면, 프랑스에 가면, 혹은 다른 어딘가로 가면 더 이상 우리의 생각과 몸을 옭아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 않아 우리가 이방인으로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규칙들이 존재함을 깨닫고 결국 한국에서 견딜 수 없어 피해왔던 것들이 다시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할 것이다.
하우스 생활이 화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우스는 단체생활에 필요한 양보와 타협은 물론이며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에서 비롯되는 다름에 대한 포용력까지 요구되는 장소였다. 이렇게만 두고 보면 하우스에서 갈등과 마찰이 많이 생길 것 같으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단체생활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입주한 사람들이라는 점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어울려보려는 호기심과 개방성이 미리부터 불관용과 비타협의 자세를 차단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우스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나 함께 살아가는 작은 섬 같은 곳이었다. 어떤 사회규범도 우리를 옭아매지 않았으며 우리는 어떤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으로 먼저 존재할 수 있었다. 서로를 예측이나 계산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서로의 의도를 가늠하지 않았다. 예상할 수 없어서 규정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열린 마음과 미소로 다가가고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똑같은 마음과 표정으로 환대해주었다.
미지의 대상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고 환대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하우스의 존재 방식을 볼 때 당연했다. 국적은 달라도 짓는 미소는 같았다. 같은 농담에 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스피커에 연결된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다같이 평상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며, 각자의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혹은 비밀스러운 경험들이나 감정들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간혹 새벽 늦은 시각까지 자리에 남아 인생에 대한 열띤 철학적 논의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서로와 주고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