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인 ‘不遠復(불원복) 태극기’
임세웅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거점을 마련하고 장기항전 태세를 구축한 고광순 의병장은 1907년 10월 16일 새벽, 연곡사를 포위한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지만 워낙 전력 차이가 커 의병장 고광순과 부장 고제량 이하 의병이 연곡사 일대에서 장렬히 전사 순국했습니다.
고광순 의병장이 순국한 지 며칠이 지나서 우국 시인이자 당대의 기록자인 매천 황현은 연곡사를 찾아갔고 고광순 의병장 무덤의 봉분을 돌보면서 의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음과 같은 추모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연곡의 수많은 봉우리 울창하기 그지없네.
나라 위해 한평생 숨어 싸우다 목숨을 바쳤도다
전마(戰馬)는 흩어져 논두렁에 누워 있고
까마귀떼만이 나무 그늘에 날아와 앉는구나
나같이 글만 아는 선비 무엇에 쓸 것인가
이름난 가문의 명성 따를 길 없네
홀로 서풍을 향해 뜨거운 눈물 흘리니
새 무덤이 국화 옆에 우뚝 솟았음이라
1958년 선생이 순국한 구례 피아골 연곡사의 소요대사탑 근처 동백나무숲 아래에는 선생을 기리는 순절비가 세워졌고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