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8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다.
남소연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으로 구래(舊來)의 토지 관행을 모두 철폐하고 일물일권적 토지소유권을 법인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일본인들이 안심하고 토지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마련했다. 이는 식민지 권력이 지세를 징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했다.
토지조사사업 이후 일본인들은 전북, 전남, 경남, 황해 등의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농지를 매집하여 지주경영을 확대했다. 그 이면에서 조선 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하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일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일제는 쌀 증산을 위해 수리조합이란 걸 활용했는데, 여기에 일본인들이 적극 참여하여 농지를 확대하고 개선했다. 일본인들은 강 주변 저습지나 상습 침수지를 대량 매입한 다음 주변 농지까지 편입시켜 수리조합을 설치하고는 수리시설 개선을 꾀했다. 이때 수리조합에 강제편입된 조선인 농민 중에는 과중한 수리조합비 부담으로 농지를 상실하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반면 일본인들은 짧은 기간에 광대한 옥토를 가진 대지주로 변신했다. 1920년대에 일제가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 쌀을 대량 증산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 그에 적극 부응한 것은 주로 일본인 대지주들이었다. 비슷한 행태를 보인 조선인 지주들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일본인 대지주들은 토지 매집으로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고는 조선인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었는데, 소작료는 수확의 60퍼센트에 달하는 고율이었다. 일본인 대지주들은 소작료로 걷어 들인 조선 쌀을 군산, 목포 등지의 이출항을 통해 일본으로 이출했다.(일제는 일본과 조선의 거래를 다른 외국과의 거래와 구별하기 위해 수출과 수입 대신 이출과 이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소작농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소작료를 수탈하기 위해 종자 선택과 비료 사용의 강제, 경작 과정 전반에 대한 감독, 소작지·관개시설 관리 강제, 수확물 품질과 처분에 관한 규제, 자금 전대(前貸)를 통한 지배, 연대 소작인 제도 적용 등 물샐 틈 없는 지배체계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대지주는 자꾸 더 성장하고 소작농들은 빈곤에 빠졌다.
일제는 조선 농민에게 식민지 농업정책을 직접 강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주층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강제보다는 지주층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지배 방식이 쌀의 대량 증산에 효과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량 이출에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대지주의 발달과 농민 몰락, 그리고 대지주를 매개로 한 쌀 이출을 두고 '토지 수탈', '쌀 수탈'이라는 말 외에 뭐라 표현해야 할까?
게다가 일제 말기에 공출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는 일본 관헌이 가택을 수색하고 농민이 먹으려고 남겨둔 쌀까지 빼앗는 실질적인 쌀 수탈이 행해지기도 했다. 일제가 조선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하지 않았다고 해서 토지조사사업이 정당한 정책이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 쌀을 대가 없이 빼앗지 않았다고 해서 산미증식계획이 조선 농민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제는 단지 약탈로 식민지를 지배하는 유치한 수준의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을 뿐이다. 사람 몸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약탈은 피부에 상처를 내지만, 제도를 이용한 지배는 뼈를 손상하며 그만큼 영향도 오래갈 수밖에 없다.(오늘날 한국이 부동산 문제로 시달리게 된 역사적 기원은 바로 토지조사사업이다)
왜 스스로 비판하는 부조적(浮彫的) 방법을 사용하는가?
사실 현재 한국에 이영훈 교수 등이 비판하는 '약탈설'을 믿는 학자는 많지 않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영훈 교수는 약탈설을 펼치는 대표적 인물로 소설가 조정래씨와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교수를 꼽는다. 조정래 작가가 토지조사사업에 반발하는 농민을 경찰이 즉결 총살하는 내용을 소설로 쓰고, 신용하 교수가 "한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한 손에는 측량기를"이란 말을 지어내서 토지조사사업의 폭력성을 주장하는 책을 저술한 것이 한국인들의 역사 인식을 좌우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필자가 위에서 소개한 내용으로 일제 수탈의 메커니즘을 분석한 학자도 많고 관련 연구 성과도 방대하게 축적되어 있음에도, 이영훈 교수는 그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조정래 작가와 신용하 교수가 학계를 대표한다고 믿는 것일까?
이영훈 교수는 부조적 방법을 썼다는 이유로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하는데, 이 교수의 방법이야말로 부조적이다. 부조적 방법이란 자기 가설에 유리한 사례만 취해서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 방법은 <반일 종족주의> 전체에서 활용되고 있다. 자본주의 맹아론과의 차이점은 맹아론자들이 자본주의 맹아의 증거를 찾을 때 이 방법을 썼다면, 이 교수 등은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을 때뿐만 아니라 비판 대상을 선택할 때에도 이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영훈 교수를 중심으로 한 뉴라이트 학자들은 주장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통계와 사료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평가를 받아 왔는데,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그들의 사료 활용 방식에 큰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10만 명이 징용됐는데 강제동원이 허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