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전 국제통상위원장 송기호 변호사
이희훈
"일본은 위안부 문제로 식민지 불법지배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게 마지막 족쇄였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잘못된 합의가 아베의 족쇄를 풀고 빗장을 열어줬다. 아베는 더 이상 전후 책임이 없다는 걸 한국을 때리며 보여주고 싶은 거다."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전 국제통상위원장은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쏟아내듯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야기를 꺼냈다. 잘못된 합의가 "아베의 족쇄를 풀어줬다"는 말도 반복했다. 2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발표를 한 직후 만난 자리였다.
이날은 송 변호사가 지난 7월 30일부터 1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정치인, 사업가, 언론인 등을 만나 각계 여론을 여론을 수집하고 돌아온 날이기도 했다. 그는 "시민사회 활동가나 평범한 재일 교포 사업가도 2015년 한일 위한부 합의로 받은 10억 엔을 어떻게 했느냐고 묻더라"면서 "이전에는 일본 국민들이 한국을 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베가, 그게 가능하다는 걸 일부러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왜 아베는 한국 때리기에 나섰나?
이는 박정희 정권 당시 체결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데자뷰다. 가해자인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협정이나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가 가지는 강제성과 불공정함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다.
송 변호사는 "아베는 지금 '내가 만들 질서가 바로 이런 것이다'를 한국을 통해 보여주려 하고 있다"면서 "일본에게 받은 10억 엔이 책임자와 피해자 프레임을 무력화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기에 현재의 일본이 처한 현실도 아베의 주장이 일본인들에게 통하는 이유라고 언급했다.
"전후 고도성장기에 비하면 지금 일본 경제는 팍팍하다.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베가 '한국에 이제 더 이상 과거 식민지 경제배상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하니까, 그게 먹히는 거다."
송 변호사는 한국에 대한 아베 내각의 폭주가 가능했던 또다른 원인으로 철저한 정보 통제를 통한 여론전을 꼽았다. '한국은 일본의 적'이라는 아베 내각의 정치적 수사가 스며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제(1일) <도쿄신문>과 인터뷰를 하는데, 아베 무역 보복 조치가 뭐가 문제냐고 묻더라.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과 만났는데, 우리 정부가 일본의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2천만 원씩 위로금을 지급한 일을 꺼내자 그것도 모르더라. 그런 정보들이 일본 안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었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은 브레이크 없이 계속 질주할 수 있을까?
송 변호사는 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당장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된 수출 품목에 대한 규제 범위를 '고시'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한계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도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한국이 아픈 부분은 일본에게도 아픈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제품을) '많이 산다'는 의미다. 일본 산업의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면 이 조치는 유지될 수 없다."
송 변호사는 그 예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하루 전인 1일자 <니혼게이자이 (일본경제신문)>의 기사 속 '수출규제'라는 단어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