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영남대의료원 70m 고공에서 농성 중인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송영숙 씨
연정
[이전 기사: "유서 쓰고 올라온 고공... 반드시 현장에 돌아갈 것"]
"오늘 물김치가 올라왔는데, 원샷 해버렸어요. 간이 되어있고 시원해서 속이 뻥 뚫리는 거 같더라고요. 그동안 간이 안 되어 있는 것들을 좀 먹었거든요. 처음에는 비상식량 달달한 거. 초코바, 캐러멜 과자 같은 걸 먹었는데, 날이 더우니 먹히지 않는 거예요. 너무 달아버려 가지고 당뇨 걸리겠다고."
올라간 지 4일째 되던 날 송영숙씨는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고 했었다. 공간이 좁아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소화가 안 된다고도 했다. 너무 더울 때는 강아지가 혓바닥 내밀고 축 늘어져 있는 것처럼 몸이 축 처진다고 했다.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어요"
7월 중순, 태풍 '다나스'가 올 때 걱정하는 문자메시지가 쇄도했고, 위에서도 많이 긴장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텐트가 계속 들썩거리고 텐트도 사람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두 해고노동자는 밤을 꼬박 새웠다. 바로 밑에서는 영남대의료원지부 김진경 지부장이 고공농성장 안전조치를 요구하며 비를 맞고 밤새 농성을 했다. 다행히 태풍이 살짝 비껴가면서 한시름 놓자마자 폭염이 시작되었다.
거의 한 달 만인 8월 1일 오후 다시 통화했을 때, 송영숙씨는 너무 더워 머리가 멍해서 말이 잘 생각 안 난다고 했다. 인터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날 대구 최고 온도는 36도, 고공에서의 체감 온도는 50도는 족히 될 것이다. 지금은 속이 부대끼고 입맛이 없어 저녁은 먹지 않고 있다고 했다.
두 끼만 먹는데도 속이 벙벙하다고 한다. 더위 때문인지 단 음식보다는 자작하게 끓인 된장이나 장아찌, 김치 같은 음식이 당긴다. 발끝차기 등 앉거나 누워서 하는 운동을 했었는데, 요즘은 더위 때문에 발끝차기 할 기운도 없다. 낮에는 이렇게 들끓다가 밤이 되면 바람이 무섭게 몰아친다. 낮과 밤 온도 차이도 크다.
"땀띠가 나서 너무 쓰라려요. 사측이 먹을 생수만 올려주고 씻을 물을 안 올려줘요. 머리는 안 감아도 되는데 땀띠가 나니 힘드네요. 손수건에 물을 묻혀서 닦아내고 있어요."
7월에는 비 올 때 받아놓은 물을 모아 머리를 감고 몸을 씻기도 했다.
"미끄덩거리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요. 서울은 천둥 번개 치면서 비가 왔다고 하는데, 대구는 이제 비 소식이 없어요. 땅이 진짜 넓기는 한가 봐요. 텐트 안은 너무 찜통이라 밖에 그늘막에서 더위를 피하는데, 구멍이 나 있어 뜨거워요. 그냥 참아내고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어요. 제일 무서운 건 바람과 난간이에요. 난간이 너무 낮아 어지러워 그쪽은 안 보려고 해요. 바람에 날아갈까 봐 무섭고..."
난간이 30~40cm로 무릎 아래 높이다. 위험해서 난간 앞에 오래 서있기가 어려워 집회할 때도 가급적 민중의례만 하고 앉아서 참여하고 있다.
7월 중순에 태풍 '다나스'와 관련해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고공농성장 안전조치 긴급 구제를 요청하여 사측과 노동조합이 안전조치 사항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영남대의료원은 채 10시간도 안 되어 "불법농성에 그 어떤 지원도 할 수 없다"며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영숙씨는 이렇게 위험한 난간에 대한 안전조치도 해주지 않는 영남대의료원인데, 지난 13년 동안 오죽했겠냐고 한다. 얼마 전에는 노동조합 측에서 부착한 현수막도 영남대의료원이 다 철거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버틸 수 있게
밤에는 텐트와 비닐이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자다가 계속 깨서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선잠을 자다가 아침이 되면 햇볕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6시에 깨어 잠시 누워 있다가 뜨거워서 텐트 밖으로 나가 바깥 날씨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대구가 분지형이라서 사방이 산인데, 산들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감싸주는 것 같아요. 영남불교대학에 금색 큰 불상이 있는데, 몇 번씩 봐요. 불상, 교회, 성당 많은 신들에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버틸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우기도 해요."
씻는 게 불편하지 않은지 물으니 "보시면 '누구세요?' 하실 거예요" 한다. 큰 거 작은 거 생리적인 현상이 편치 않고, 화장실 가는 게 귀찮아 물도 잘 안 먹게 된다. 화장실이라고 해봐야 농성장 구석에 강아지 배변 패드 깔고 볼일을 보는 거다.
"난간이 낮고 바람이 많아 패드가 펄럭거려요. 바람을 최대한 막으면서 볼일을 봐야 해요."
영숙씨와 필자가 씁쓸한 웃음을 나눈다. 고공농성 초기, 영숙씨는 무엇보다 생리 날짜 다가오는 게 두렵다고 했었다. 한 달 뒤 두 번째 통화에서 생리통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라오기 전에는 위에서 할 일이 많이 있겠나 했는데, 막상 올라오고 나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씻고 아침 출근선전전이 시작되면 아래 위 서로 손을 흔들고 생사 확인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먹고 기자회견 참여하고, 안부 응원 문자에 답장을 하고 나면 오전이 간다.
그리고 충전할 핸드폰 배터리 등 물품 정리를 해서 내려보낸다. 지지방문하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일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후다닥 저녁 먹고 투쟁문화제까지 마치면 해가 저문다. 집회 정리하고 사람들이 밑에 와서 손을 흔들면 함께 인사를 나눈다. 멀어서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걸음걸이만 봐도 누군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영숙씨는 저녁 무렵 노을 질 때 하늘이 참 예쁘다고 했다. 밑에 있을 때는 잘 안 봤는데, 여기는 눈높이가 같으니 자연스레 보게 된다.
"노을이 빨갛다가 푸르스름하다가 보라색이 되는 그때가 좋아요. 깜깜한 밤에 네온사인 반짝이는 것도 이쁘죠. 문화제 끝나고 어두우면 못하니까 고양이 세수를 후다닥 해요. 시간이 달리기하듯이 금방 후다닥 가요. 금세 9시, 10시예요."
고공농성 초에는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는데, 7월 말 폭염이 시작된 이후로는 시간이 너무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