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경제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한 2일 오후 서울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다.
이희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한국 기업, 일본 정부, 일본 기업과 함께 재단을 만들어 해결하라고 한다. 이른바 2+2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책임이 없는 한국 정부가 왜 재단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책임이 없는 한국 기업이 왜 재단에 출연해야 한다는 것인가?
제안자들은 선례로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을 든다. 그 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동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2000년에 독일 정부와 기업이 각각 50억 마르크씩 출연해서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가해국의 정부와 기업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의 사안에 적용하면, 당연히 가해국인 일본의 정부와 기업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아닌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할 일도 한국 기업이 동참해야 할 일도 아니다. 하물며 가해국은 책임을 못 지겠다고 버티면서 오히려 피해국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임에랴.
또한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은 1990년대에 관련 피해자들이 미국에서 독일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소송들로 인해 독일 기업에 대한 미국 내의 여론이 나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서서 재단을 만들어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했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재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한 케이스는 없고, 그 결과 재단은 '법적 책임'은 배제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사안은 그 점에서도 다르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대법원 판결이라는 승소 확정판결을 가지고 있다. 그 판결에는 일본 기업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해결 방안은 '법적 책임'을 지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물론 피해자들이 동의한다면, 일본 정부와 기업이 재단을 만들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까지 포함한 전체 피해자들과 화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법적 책임'의 핵심인 사실인정, 사죄, 배상, 진상규명, 위령 등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원래 2+2는 대한변협이 일본변호사연합회와 함께 제안하여 2017년 6월 13일에 이혜훈 의원 등 10인에 의해 발의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인권재단의 설립에 관한 법률안」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지체되는 가운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피해자들을 위해 신속하고도 포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뜻이 담긴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로써는 일정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일본 기업이 책임자로 확정된 지금으로써는 설득력이 없다.
2+1?
2+1은 매우 기이한 주장이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한국 기업, 일본 기업과 함께 재단을 만들어 해결하라는 주장인데, 일본 정부는 왜 빼자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강제동원을 주도한 것은 일본 정부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야말로 보조자인 일본 기업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서 일본 정부가 빠진 것은, 원고들이 일본에서는 일본 정부와 기업 모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기업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라는 국제법상의 원칙, 즉 '주권면제' 혹은 '국가면제'의 원칙 때문이다. 물론 이 원칙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 원칙을 극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해서, 다시 말해 일본 정부에게 책임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송 전술상의 이유로 한국 소송에서는 일본 정부를 피고에서 뺀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재단에서 일본 정부는 빼주자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본 정부가 세게 반발하니까 빼주자'라는 것 이외에 달리 이유를 찾을 길이 없다. 참으로 참담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 2+1 관련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청와대가 "비상식적 발상"이라며 일축한 것은 지당한 일이었다.
1+1?
1+1은 지난 6월 19일 무렵에 한국 정부가 아베 정부에게 내놓았다가 퇴짜를 맞은 제안이다. 당시의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제안 부분은 아래와 같다.
"소송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하여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일본 측이 "수용할 경우, 일본 정부가 요청한 바 있는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 1항 협의 절차의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으며, 이러한 입장을 최근 일본 정부에 전달하였다."
- 「강제징용 판결문제 우리 정부 입장」(2019.6.19.)
하지만 이 제안은, 첫째 책임이 없는 한국 기업이 출연금을 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둘째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안을 한국 정부가 제안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셋째 진행 중인 관련 소송이 있고, 소송 제기가 어려운 피해자들의 문제도 있는데 "확정판결 피해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재단을 만든다는 것이 해결방안이 되기는 어렵다. 넷째 결국 화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것인데, 사실인정, 사죄, 진상규명, 위령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확정판결의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따라서 1+1은 설득력이 없다.
1+1/α?
1+1이 주저앉은 후 한편에서 1+1/α라는 안을 내놓고 있다. 1+1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고 α는 한국 정부인데, 1+1+1이라고 하지 않고 1+1/α라고 하는 이유는 책임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α의 근거는 '외국의 강점상태를 용인하여 그 불법행위로 인해 자국민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보호받지 못한 상태를 시정하지 못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책임을 그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제안도 책임이 없는 한국 기업을 참여시키자는 것이니 1+1이라는 그 출발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왜 일본 정부는 빼는가라는 문제도 있다.
/α도 심각하다. 가해자의 불법행위 책임이 문제인 사안에, 왜 뜬금없이 피해국의 자국민 보호 책임이라는 명백히 다른 범주에 속하는 별개의 책임을 섞는가? 게다가 이 제안에서도 가해국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면 과연 무도한 강도의 책임은 제쳐두고 힘이 없었던 가장에게만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제안은 실현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위의 모든 제안들은, 아베 정부가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이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는 방식은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애당초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 정부의 반발은 일본 기업의 경제적 손실 때문이 아니다. 특별한 형식과 내용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한국인 피해자는 소수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의 액수는 일본의 거대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가 나서서 무리한 통상공격까지 감행하고 있으니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추동력 확보,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견제, 새로운 동북아질서 판짜기 등의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아베의 신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