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큰사진보기 ▲체포 압송되는 3·1운동 주도학생들독립기념관 김성숙은 단신으로 3ㆍ1혁명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봉선사의 여러 승려들과 함께하였다. 양주군은 경기도 타지역보다 이른 시점에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많은 군민이 참여하여 그만큼 희생자도 많았다. 구체적인 연구기록을 소개한다.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현재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 승려인 김성숙ㆍ이순재(지월 스님)ㆍ강원주와 서울 종로에서 약종상을 하는 김석로 등은 서울에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부평리 부근의 주민들을 모아 광릉천 시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30일로 결정하고 동민들에게 독립만세 시위를 할 것과 동참을 촉구하는 문건을 재작ㆍ배포하기로 하였다. 큰사진보기 ▲민족대표 공판 장면(동아일보, 1920.7.13)정운현 이들은 조선독립임시사무소 명의로 "지금 파리강화회의에서는 12개국이 독립국이 될 것을 결정하였다. 한국도 이 기회에 극력운동을 하면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었다. 3월 29일 봉선사 서기실에서 약 300매의 유인물을 인쇄하여 승려 강완수 등 2명이 같은 날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부평리ㆍ진벌리 등 부근 4개 동리 민가에 배포하였다. 그리하여 약 1,0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김성숙과 이순재는 만세시위운동이 다음날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미리 부평리의 이재일에게 격문의 내용을 편지로 써서 보냈다. 김성숙과 이순재의 연락을 받은 이재일은 광릉천시장 만세시위운동 다음날인 3월 31일 광릉천 자갈마당에서 제2차 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전날의 만세시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헌병대와 경찰서로 연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일제는 시위확장을 막기 위해 헌병을 출동시켜 진압에 나섰다. 그리하여 2차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이재일ㆍ김순만ㆍ최대봉ㆍ양상돌 등 8명이 체포되어 김성숙ㆍ이순재ㆍ강완수ㆍ김석로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주석 3) 큰사진보기 ▲3.1혁명 33인 기록화정운현 한민족은 국치 9년 만에 거족적인 항일투쟁에 나섰다. 마침내 1919년 3ㆍ1독립혁명이 전개되고, 천도교ㆍ기독교ㆍ불교계의 민족대표 33인 명의로 민족의 자주독립이 선포되었다. 봉선사에서 독립운동의 기미를 알고 있었던 김성숙은 승려복 차림으로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거행된 독립선언 선포행사에 참여하고, 이어서 봉선사 승려들과 별도의 성명서를 사찰 내에서 제작했다. 그리고 경기도 각 지역에 독립선언서와 함께 이를 배포하였다. 큰사진보기 ▲17인 만기출옥(동아일보, 1921.11.5)정운현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 팔각정에서 한위건이 학생을 대표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할 때 김성숙도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김성숙은 독립 만세를 부른 후 경기도 양주와 포천 지역을 맡아 독립선언서를 돌리고 또 그 성명서를 프린트해서 돌렸다. 그는 또 봉선사의 동료 승려인 이순재ㆍ김석로ㆍ강완수 등과 함께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로 격문을 만들었다. 이 격문의 취지는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이 독립하기로 결정했으므로 조선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약 200매 분량의 격문을 작성하여 봉선사 인근 마을에 살포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모아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는데, 공범 7명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주석 4) 주석 3> 이동원, 앞의 책, 46~47쪽. 4> 임혜봉, 앞의 책, 4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운암_김성숙_평전 #3.1혁명 #봉선사 #조선독립임시사무소 #김성숙 추천4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26세, 가족과 함께 만주 망명 구독하기 연재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 다음글6화출옥 뒤 각종 사회운동단체 활동 현재글5화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로 격문 만들어 만세운동하다 체포돼 이전글4화봉선사에서 국치 겪으며 민족의식 길러 추천 연재 난 늙을 줄 몰랐다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와글와글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사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날 서점은 눈물바다가 됐다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SNS 인기콘텐츠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이충재 칼럼] '김건희 나라'의 아부꾼들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망언도 이런 망언이..." 이재명, 김문수·김광동·박지향 파면 요구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로 격문 만들어 만세운동하다 체포돼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7화독립운동 위해 중국 망명, 민국대학 입학 6화출옥 뒤 각종 사회운동단체 활동 5화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로 격문 만들어 만세운동하다 체포돼 4화봉선사에서 국치 겪으며 민족의식 길러 3화용문사에 이어 봉선사에서 승려생활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