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청구권협정에 표기된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이나 외무대신의 서명.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그런데 「청구권협정」의 '문언의 통상적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 청구권에 관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매우 강한 표현이 사용되어 있으니 언뜻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해결된다는 청구권의 원인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조약들에서 해결된 권리의 원인이 명시되어 있는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예를 들어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정식명칭은 일본국과의 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의 전문에는 "양자 사이의 전쟁상태가 존재하는 데 따른 결과로서 지금도 여전히 미해결인 문제를 해결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1972년에 체결된 '일본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공동성명' 제5조에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 국민의 우호를 위해, 일본국에 대한 전쟁배상의 청구를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해결된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으니 당연히 해결된 범위가 특정된다.
그런데 「청구권협정」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그래서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1965년 이래 한국 정부의 일관된 해석이다.
위의 해석에서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해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그 제4조(a)의 내용은 '한반도(Korea)의 시정당국 및 주민과 일본국 및 그 국민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재산 및 청구권의 처리는 특별협정에 의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서명국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는 그 조약에 구속되지 않는다. 다만, 위 조약 제21조에 '한반도는 제4조의 이익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한일 양국 모두 사실상 위 조약을 근거로 「청구권협정」을 체결했으며, 「청구권협정」 제2조 자체에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가 명기되어 있으므로, 「청구권협정」은 그러한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체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당사국들이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다는 사정도 있어서, 식민지 지배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그 조약에 근거하여 체결된 「청구권협정」 또한 식민지 지배 문제는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법원 판결은 바로 이 점을 짚은 것이다.
다만, 이 점에 관해서는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에는 "포함하여"라고 되어 있으니 그렇게 한정해서는 안 된다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포함하여"라는 표현이 있다고 해서, '성질상' 제4조의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인 불법적 식민지배의 문제가 당연히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일본 정부도 같은 취지의 입장을 취했다. 즉,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1965년에 체결된 「청구권협정」 사이의 기간에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어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는 지역과 주민에 변경이 있었고, 일본 어선 나포 문제가 새로 발생했는데, 그러한 부분들까지 반영하여 해결되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포함하여'라고 했다는 것이다.
'영토의 분리' 문제의 처리
게다가 1965년 당시부터 한일 양국은 이 문제에 관해 공통된 입장을 내놓았다. 1965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는 「청구권협정」이 "영토의 분리 분할에서 오는 재정상 및 민사상의 청구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되어 있다. 일본 측도 "우리나라(일본)에 의한 조선의 분리 독립의 승인에 따라, 일한 양국 간에 처리를 할 필요가 있게 된 양국 및 양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일 양국의 이러한 입장은 이후 바뀐 적이 없다.
결국 한일 양국의 공통된 입장에 따르면, 「청구권협정」은 '영토의 분리'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영토의 분리'라고 할 때는, 분리 이전의 영토의 불법성은 전제되지 않으며, 오히려 합법성이 전제된다. '영토의 분리'에 따른 문제는, 예를 들면 식민지 조선에 진출해 있던 일본 은행이 패전 후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가 버린 경우, 식민지 조선인이 그 은행에 들었던 예금이나 적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과 같은 문제인 것이다.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이 지점에서 「기본조약」(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제2조와 「청구권협정」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조약」 제2조는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조문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해석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일본 정부는 1910년 조약은 당초에는 유효였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에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하고, 따라서 35년간의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합법지배'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1910년 조약 등이 애당초 무효라고 해석하고, 따라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 강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하여 체결된 「청구권협정」에서는 '불법 강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했고, 일본 정부는 '법적 근거'가 있는 부분, '합법적'인 부분만을 다루었다.
그 결과 '불법강점' 문제, 다시 말해 불법적 식민지배의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일회담백서』는 「청구권협정」이 "일제의 36년간 식민지적 통치의 대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짚고 있다. 1965년에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어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지만,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는 그렇게 미해결인 상태로 남겨진 것이다.
다시 한번 확인한다.
「청구권협정」은 '영토의 분리'에 따른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불법적 식민지배의 문제는 그 대상이 아니었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 점검' 글 싣는 순서 |
1. 한-일 '강대강' 대결의 진원... 대법원 판결 핵심 정리
http://omn.kr/1k7th
2. '불법강점'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3.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4. 아베 정부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5.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6.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
7.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 제목은 바뀔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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