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가득한 하늘로 점프하는 '변화의 월담' 리조 대표.
권우성
움직임을 실험하고 탐구하며 관계를 배우는 곳
- 움직임 교육 연구소 '변화의 월담'은 어떤 곳인가?
"움직이는 능력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젠더나 나이, 사회적 지위, 국적 등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해볼 수 있는 움직임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탐구하면서 자기 자신과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곳이다.
움직임 교육에서는 몸하고 마음이 같이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것이고,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간다. 신체와 정신을 더 이상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접근하지 않고, 함께 일상에서 회복하고 움직이는 교육을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요즘은 헬스클럽에서 특정 부위를 단련하거나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을 하기도 하지 않나. 변화의 월담에서 진행하는 움직임 교육은 특정한 기술과 형식에 맞춰서 몸을 개발시키는 게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가지고 있을 본성과 능력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는 교육이다. 그게 운동이나 스포츠 교육과 구별 지어 움직임 교육이라 칭한 이유이다."
- 변화의 월담은 파쿠르 하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파쿠르라는 단어가 움직임 교육 같은 말보다는 더 인기가 좋다. 낯선 외래어이고 SNS 노출도가 높아서 그러는 걸까? 파쿠르는 불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parcours'라는 단어에서 기원했다. 1980년대의 파리를 중심으로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청소년들이 뛰어 놀 곳이 줄었다. 그때 아이들은 도심 속 건축물과 조형물들을 이용하면서 뛰어놀았다. 차후 그렇게 움직이면서 자기 몸을 탐구하는 활동에 '파쿠르'라고 이름을 붙인 거다.
사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파쿠르와 변화의 월담에서 교육하는 파쿠르는 좀 다르다. 우리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포괄하는 교육을 한다. 화려한 지붕 사이 뛰어넘기나 높은 벽 기어오르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가장 지루한 인도와 계단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네발, 두발, 전신 협응 움직임, 벽을 힘차게 뛰어 넘는 것뿐만 아니라 벽에서 흘러내리듯 거꾸로 착지하기, 눈을 감고 시각 외 다른 감각으로 길 찾아가기 등 다양한 움직임을 탐구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한다.
도심에서 어떤 건축물을 넘을 수 있느냐가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다양한 몸들이 도심에서 함께 놀이하는 방법과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주 관심사다. 획일화된 '극복' 혹은 '도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개개인 몸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위험 감수'와 '놀이'를 가능케 하는 교육 환경과 문화가 중요하다."
- 파쿠르는 주로 지형물을 넘는 운동인가?
"도시의 지형물을 활용해서 움직이고 놀이하는 것이라 말한다. 유튜브에서 벽을 기어오르고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는 영상을 많이 보셨을 것 같다. 그것도 일부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사실 그러한 자극적인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문화를 챌린지하고 좀 더 다양한 몸들이 함께, 즐겁게, 안전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변화의 월담의 미션이기도 하다. 살을 빼야 한다거나 근력을 키워야 파쿠르를 할 수 있다거나 도심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야 한다. 모든 건 교육하는 사람의 방법론(페다고지), 다양한 개인을 향한 기획자의 섬세한 감수성, 함께하는 사람과 함께 만드는 분위기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생긴다.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암벽등반을 배운 적이 있다. 바위 표면의 미세한 틈에 엄지발가락을 끼우고 그 발가락 하나로 몸 전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 내 몸이 실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기까지 많은 시간과 지지, 격려, 가이드를 받았다. 동료 선생님은 할 수 있는 가능성만 제시해주고, 나머지는 내가 내 몸하고 실험하고 신뢰관계를 쌓는 과정이었다. 변화의 월담은 그런 배움과 나눔, 유대의 경험을 꾸리는 장이다."
내 몸의 구조와 원리를 감각으로 깨닫는 일
- 움직임 교육 연구소는 다른 운동 센터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우리는 교육을 하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움직임 교육을 소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서 대하지 않는다는 게 차이점일 것 같다. 운동 배우러 간다고 하면 지정된 공간에 가서 도구와 서비스를 제공 받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걸 생각하지 않나.
언제부터 움직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몸과 괴리되어 '운동하는 몸'을 만드는 소비 양상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소비할 수 있는 사람만 운동을 하게 되고, 더 심각한 건 소비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변화의 월담에서는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습관, 방법을 탐구하고 일상 공간에서 몸으로 노는 관계와 문화를 회복하는 교육을 한다.
자기가 채우고 싶은 욕구를 달성하고 싶어서 온 동호회나 클럽, 멤버십 문화는 간적인 관계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소비적인 관계로 단절된다. 자기 계발의 덫에 갇혀서 그 욕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 자기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연결'을 추구하는 것을 진정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월담에서는 내 몸이 이상적인 몸이 돼야 한다거나, 좋은 상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몸무게를 줄이거나 어떤 운동 레벨을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인지하고, 몸을 실제로 움직이면서 '내 몸이 이렇게 섬세한 구조와 원리로 살아 있구나'를 감각으로 깨닫는 거다. 일상생활에서 내 몸과 다른 사물, 사람이 접촉할 때의 느낌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배워가는 과정이다."
변화의 월담이 이야기하는 '움직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포츠'와는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의 파쿠르 역시 마찬가지다.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며 건물을 뛰어 넘는 20대 남성의 그것과는 달라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파쿠르뿐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있다. 파쿠르하는 여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회적 이미지가 있다. 두 대표는 이런 경험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파쿠르 한다고 하면 '여자가 이런 위험한 운동을'이라는 시선을 받지 않나?
"그렇다. 일단 파쿠르 자체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물, 사진 등으로 방송과 소셜 미디어에 많이 팔리는 현상이 영향을 끼친다.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10대~2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파쿠르 동호회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위험'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무엇이든지 통제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위험하니까 하지 마, 위험하니까 가지 마. 위험하니까 운동하지 말라는 등 일단 심사숙고 없는 제재가 가해진다. 특히 여성으로 태어나면서 몸에 적용되는 수만 가지의 규범과 통제 기제를 살펴보자. 다리 벌리고 앉지 마라, 여자 몸에 상처가 있으면 되냐, 손이 왜 이렇게 거치냐, 팔뚝과 종아리는 굵어지면 보기 싫다 등. 당연히 파쿠르 하는 여성은 '정상'이 아니게 보이고 더 예외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비춰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위험의 실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몸의 가능성을 펼칠 만한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여성을 더 쉽게 통제하려는 성향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