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렇지만, 미국이 핵무장을 묵인해준 나라가 여럿 있지 않은가? 미국이 동맹국 한국한테도 그런 대우를 해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애석하게도 현실 가능성이 낮은 추측이다.
미국은 소련·영국·프랑스의 핵 보유를 묵인했다. 아니,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들은 미국과 함께 1945년 이후의 세계질서를 '창업'한 '대주주'들이다. '회장님'이라고 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이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핵무장을 저지하다가 결국 1969년 6월 NPT 조약을 통해 핵무장을 합법화해줬다. 미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아시아·태평양 패권을 상실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국이 소련·영국·프랑스·중국처럼 합법적 핵보유국이 될 수 없다면, 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과 현재의 북한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이 동맹국 한국에 대해 그 정도의 묵인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매우 많다.
미국이 파키스탄 핵무장을 묵인한 것은 이 지역에 대한 구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인도 핵무장을 묵인한 것은 파키스탄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핵무장을 묵인한 것은 묵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유대인들 때문에라도, 이스라엘 핵무장을 모른 척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와 동시에 중동 국가들을 견제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한편, 2018년 연초부터 미국이 북한에 우호적이 된 데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대미 투쟁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2017년 12월을 기점으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공식 수정된 것과 관련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NPT 체결 다음 달인 1969년 7월의 닉슨 독트린 발표 이래,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과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했다. 닉슨 대통령이 발표한 이 독트린은 '아시아·태평양에서 계속해서 역할을 수행하되, 베트남전쟁 같은 직접적 개입은 가급적 피하겠다'는 것이었다. 중국과의 적대적 제휴 속에서 미국은 소련의 아시아·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고 이 지역 패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법적 계승자인 러시아가 소련의 국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편, 중국이 1990년대 이래로 급성장하며 미국을 바짝 추격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그래서 2017년 12월 공식화한 게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향한 중국의 팽창을 막고자 인도·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공식적으로 달라지는 시점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자세가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북한 핵무기가 인도·태평양 전략에 유용한 측면이 있음을 시사하는 변화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파키스탄·인도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이 유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핵 도미노
한국 핵무장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그처럼 유용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한국 핵무장도 파키스탄·인도의 경우처럼 미국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기왕에 새로운 국가의 핵보유를 묵인해줘야 한다면,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일본을 선택하는 게 더 낫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을 놔둔 채, 미국이 한국 핵무기를 앞세워 이 전략을 수행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먼저 핵무장을 한다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일본이 동북아에서 강력한 대리인이 돼주기를 바라는 미국의 희망사항과 어긋난다. 한국이 핵을 갖게 되면, 한일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일본을 앞세워 이 지역을 관리하는 미국의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또 한국 핵무장은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에 타격이 될 수도 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구축(構築, 쌓아 올려서 만듦)이라면 모르지만, 구축(驅逐, 몰아서 쫓아내는 것)이 돼 미국의 영향력을 몰아낼 수도 있는 일이다. 미국이 박정희 정권의 핵 개발을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이 가만 있을 리 없다. 한국·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타이완(대만)도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지금의 혼란기에 살아남아 중국과 맞서려면 타이완도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경계에 있는 타이완이 그런 고민을 하게 되면,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들도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동아시아 전체에 '핵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의 존재 의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 지역을 자국 핵무기로 보호하려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일이란 이야기다. 미국의 영향력이 퇴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일을 한국 보수 정치권이 추진하려 한다면, 이들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국 보수진영이 '세계적 반미 대열'에 가세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당이 반미세력으로 둔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당의 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