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라마단 기간의 저녁식사 '이프타르' 를 무료로 대접하는 장소. 수백 명의 사람이 함께 축복의 기도를 하고 밥을 나눠먹는다. 대추야자 세 개와 라마단 저녁식사.
최늘샘
룩소르의 다정한 사기꾼들
"차이나? 코리아? 컴 온, 컴 온! 굿 프라이스! 스페셜 프라이스 포 유! 와이 낫? 왜 안 사? 왓 두 유 원트?(얼마를 원해?)"
"아니, 나는 아무 것도 안 살 거고, 그냥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라마단의 축복을 감사히 받은 한편, 후르가다, 카이로, 아스완, 다합, 이집트 어디서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바가지와 사기를 꽤 당했다. 그 중 두어 시간 만에 세 번의 사기를 당하고 눈물이 핑 돌았던 룩소르의 사기꾼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집트 남부 오뉴월 평균 최고 기온은 45도를 넘나든다. 그 더위에, 낮에는 요리된 음식을 찾기 어려웠고, 해 질 무렵 시장에서 작은 빵 한 봉지를 샀다. 50파운드(3500원)를 부르기에 첫날에는 그냥 사 먹고, 다음 날엔 비싸다고 느껴져 '로컬 프라이스, 현지 가격'으로 달라고 말하니 30파운드로 깎아주었다.
영어가 통하는 동네 청년들에게 물었더니 5나 10파운드 정도면 사는 빵이라고 했다. 열 배든 세 배든, 금액을 떠나 두 번이나 바가지를 쓴 게 화가 나서 다시 찾아가 따졌다. 아랍어를 모르니 손짓과 표정으로 따질 뿐이었다.
"너네 이거 다른 이집트인들이 5파운드라던데, 나한테 두 번이나 사기친 거니?!"
배고프고 지치고 억울한 내 표정을 이해한 듯, 빵집 청년들은 화내지 말라고 웃으며 나를 껴안아 다독이더니 10파운드만 돌려주었다. 그 빵의 현지 가격을 나는 영영 알 수 없었다.
카이로에서 일하는 지인의 프로젝트를 돕기로 해서, 이집트 전화번호가 필요해졌다. 여행 중 처음으로 현지 핸드폰 유심(USIM)을 사기로 했다. 문을 닫은 통신사 앞을 서성이는데 두 청년이 다가와 유심을 팔았다.
인터뷰 영상들을 업로드할 겸 20기가(20000메가) 데이터를 샀는데 숙소에서 확인해보니 150메가만 사용할 수 있는 유심이었다. 정말 20기가 맞냐고, 눈을 보며 몇 번이나 물었고 그들은 대답했는데,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그들을 만난 곳에 달려가니 아무도 없었다. 주변 상인들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고 말하자 사기꾼들에게 전화를 했고 곧 그들이 왔다. 배신감에 눈물이 났다. 빵집 청년들처럼, 유심 청년들도 온갖 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다독였다.
"진정하고 앉아. 차 마실래? 데이터가 적어? 돈 다시 줄게. 됐지? 아 유 해피 나우? (이제 행복해?) 네가 이집트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150파운드를 줬는데 그들은 120을 돌려주었다. 욕이 튀어나왔다.
"아니. 30 모자르잖아. 이집트에서 행복하냐고? 장난치냐? 이 삐리리들아!"
"근데 이게 다야. 어쩌지, 우리 방금 그 돈으로 밥 먹었거든. 미안."
터덜터덜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옷 수선소의 중년 남성이 말을 걸어 왔다.
"너 해피랜드 호스텔에 있어? 거기 주인이 내 형제야. 여기 앉아서 차 마시고 가. 오늘 밤은 라마단 축제날인데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고 새옷을 사는 날이야. 너 겔라비아(이집트 전통의상)에 관심 있으면 내가 저렴한 현지인 가게에 데려다 줄게."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데려간 가게는 현지인 가게가 아닌 관광객용 선물가게였다. 나는 끝까지 그가 사기꾼인 줄은 모르고, 그의 발품이 미안해서 맘에 들지 않는 옷을 기어이 사고 말았다.
가게에서 나오는 순간 그는 나에게 20파운드를 요구했고, 내가 돈을 주지 않자 헤어지기 직전에는 5파운드를 요구했다. 5파운드는 350원이다. 풍채 좋고 점잖던 그는 정녕 나에게서 350원을 받으려고 30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거리를 걸은 것일까. 그의 진심을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
다합에서 만난 여행자 김진수씨의 느긋한 통찰력이 나의 뒤통수를 쳤다. "한국에 살던 우리가 정찰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지, 원래 물건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 아닐까요?"
다시 한 번 "알라 알라 이집트!",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는 그런 곳이다. 온갖 바가지도 갖가지 사기도, 모두 다 여행과 삶의 경험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넓은 마음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