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안(솔비) 작가는 여성의 삶을 표현한 퍼포먼스 '레드'를 선보이고 있다.
MAP크루
어느 날 영화계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갔다가 현재 소속사 대표를 만났다. 당시 가나아트센터에서 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전문가였기에 그를 붙잡고 많은 것을 물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대하던 소속사 대표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삶과 일치시킬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떠니?"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삶을 고민했다. 삶이 뭘까? 어렵게 고민해서 그에게 건넸다. "어려서부터 무대에 서는 게 제 일이었어요.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그거 재미있겠네.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
몇 번의 안무를 짜고 오랫동안 연습했다. 그동안 죽을힘을 다한 동작이 한 번의 무대로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이렇게 날려버릴 바에는 연습한 것을 캔버스에 흔적으로 남기자 다짐했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열었다. SNS를 통해서 알려진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이다. 그동안 그렸던 70여 점을 모았다. 시리즈는 <레드>(RED), <블루>(BLUE), <바이올렛>(VIOLET)으로 이어진다.
먼저 2017년에 선보인 <레드>부터 소개하자면, 이는 상처받는 여성의 삶을 대변한다. 아마도 그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수치와 상처에 관한 이야기인 듯싶다. 이듬해 선보인 <블루>는 계급사회와 사회계층 간의 불평등을 표현한다. 퍼포먼스엔 슈트가 등장하는데, 이는 자신의 계급을 높이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을 드러낸 오브제다.
하지만 보이는 외적인 것이 정말로 중요한가를 되묻는다. 실제로 퍼포먼스에 사용된 노래 <클라스 업>의 가사엔 'meaningless'(의미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시리즈를 마감하는 <바이올렛>은 아름답게 포장된 사랑의 이면이다. 이별의 흔적인 '멍'의 색깔을 나타내는 아픔. 결국 그가 받았던 상처를 표현한 것이다.
2017년 5월, KBS <뮤직뱅크>에서 이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공개해 화제가 됐다. 원래는 가나아트센터에서 언론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쇼케이스 작품이었는데 이것이 방송으로 발전한 것이다. 생방송 직전에 PD와 상의했는데, 지금껏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파격이 두려웠다. 하지만 PD는 그를 믿어줬다. 나중에는 타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왜 안 해주냐?"라는 볼멘소리까지 들었다.
생방송이 나간 후 큰 이슈가 됐다.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을 휩쓸었고, 방송 조회 수가 무려 30만을 넘기며 댓글도 넘쳐났다. "충격이다", "왜 애들 보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걸 하냐?"라는 댓글도 있었다. 나중에 PD에게 괜찮은지 물으니 "정 안 되면 잘리지 뭐"라며 안심시켜줬다. 당시엔 그만큼 심각했다. 그러나 초반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반전됐다. 아이돌 후배도 "음악방송에 변화가 필요했는데 선배가 해줬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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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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