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왼쪽부터)
최윤석
남재준 원장 시절부터 이병기 원장을 거쳐 이병호 원장 때까지 박근혜가 상납받은 국정원 예산은 모두 35억 원이다. 이 돈은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로 배정된 돈이었다. 이 돈은 예산명세서상에는 '특수공작사업비'라는 별도 항목으로 편성되는데, 연간 40억 원이 배정되고 있었다.
이 돈의 불출 및 집행절차는 이렇다. 국정원장이 기획조정실장에게 불출을 지시한다. 그러면 기조실장은 기획조정실 소속 예산관에게 지출결의서 작성을 지시한다. 예산관이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기조실장이 결재를 하고, 다시 예산관은 지출결의서에 적힌 금액만큼을 국고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한다.
그 뒤 기조실장은 국정원장에게 불출 금액을 보고하고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그 돈을 쓴다. 통상적으로는 국정원장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기조실장이 매달 반복적으로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국고 계좌에서 인출해 원장에게 전달하거나 국정원 사무실의 금고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쓴다.
이런 특별사업비의 실제 사용처는 국정원장만이 알고 있거나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은 극소수의 국정원 직원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국정원 예산에 관한 회계 검사는 국정원장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므로 이 돈에 대해 외부인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같은 범행이 3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다.
혼자만 받는 게 미안했을까
그런데 박근혜는 혼자서만 돈을 받는 게 미안했는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돈을 보내주라고 국정원에 지시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경, 박근혜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매월 5천만 원 정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원종이었다.
매달 박근혜에게 1억 원씩을 상납하고 있던 이병호 원장은 이헌수 기조실장에게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에서 돈을 빼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도 주라고 지시한다.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돈을 직접 전달한 사람은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아무개였다. 박 아무개 비서실장은 2016년 6월부터 8월까지 3번에 걸쳐 서류봉투에 돈을 담아, 이원종 실장의 수행비서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 경내로 들어와 이원종 실장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이원종 비서실장은 직접 5천만 원이 든 서류봉투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3차례에 걸쳐 현금 5천만 원씩 모두 1억5천만 원을 받았다. 이병호 원장한테서 '다섯개쯤 보내주겠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 이원종 실장은 처음에는 5백만 원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실제 받은 돈이 5천만 원이어서 박근혜에게 질문까지 하였다.
박근혜는 '내가 국정원에 요청한 것이니 쓰라'고 하고 '비서실 운영비로 쓰면 된다'고 이 실장에게 말하였다. 이원종 실장은 이 돈을 수행비서의 의견에 따라 비서실장 집무실이 아니라 비서실장 관저 금고에 보관하다가 소속 직원 등의 격려금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재판에서 주장하였다.
3개로 나뉘어 진행된 재판의 결과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국정원장,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청와대 비서관 등 모두 9명이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피고인별로 따로 이루어졌다. 돈을 받은 박근혜는 이 범행만으로 단독 기소되어 혼자 재판을 받았다(박근혜 재판). 돈을 제공한 측인 국정원쪽 피고인들 네 명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함께 기소되어 재판(국정원장 등 재판)을 받았다. 박근혜와 국정원 사이에 중개역할을 한 이재만 비서관 등 박근혜 측근 3인방들도 따로 기소되어 재판(이재만 비서관 등 재판)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2심까지는 3곳의 재판부에서 제각각 진행되다보니, 법률 적용면에서 차이가 발생하였다.
국정원장을 국고 손실죄의 적용 대상인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처벌이 조금 달라졌다. 박근혜 재판의 2심 재판부와 국정원장 등 재판의 2심 재판부는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회계관계직원'이지만 국정원장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정원 기조실장인 이헌수가 관여한 행위에 대해서만 국고 손실죄나 공범죄가 적용될 수 있고, 이 실장이 관여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횡령죄나 횡령죄 공범으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다.
또 박근혜가 따로 지시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2016년 9월에 이병호 국정원장의 지시로 이헌수 실장이 박근혜에게 준 2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도 재판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뇌물죄가 적용되지 않으면 국고 손실죄나 횡령죄로만 처벌된다.
2019년 7월까지 진행된 이들 피고인들에 대한 2심 판결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는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 원을 선고받았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 받은 돈 6억 원에 대해 횡령죄 공범으로, 이병기 원장 시절과 이병호 원장 시절에 받은 8억과 19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또 이원종 실장이 받은 1억 5천만 원에 대해서도 국고 손실죄 공범이 인정되었다. 다만 이병호 원장으로부터 2016년 9월에 받은 2억 원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 돈은 박근혜가 요구한 적이 없는 돈이었기 때문에 박근혜에게 책임을 함께 물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 받은 돈과 후임 원장 시절에 받은 돈에 대해 다른 죄명이 적용된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남재준 원장 시절 범행에는 이헌수 기조실장이 직접 가담하지 않아서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2심 재판부들의 이유였다. 다만 국고 손실죄보다 형량이 조금 낮은 횡령죄는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재준 원장 역시 횡령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현대차그룹을 압박하여 재향경우회에 특혜를 제공한 범죄와 합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병기 국정원장은 남 원장과 달리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말한 대로 회계관계직원의 지위를 가진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횡령죄보다 형량이 높은 국고 손실죄 공범이 되었다. 그 역시 최경환 부총리 등에게 1억 3천200만 원을 제공한 범죄와 합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후임자였던 이병호 국정원장의 경우에는 박근혜에게 21억 원을 제공한 것은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1억 5천만 원을 제공한 것은 업무상 횡령죄로 처벌되었다. 이원종 실장에게 돈을 전달하는데는 회계관계직원인 이헌수 실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법률이 적용되었다. 그 역시 청와대의 2016년 총선 관련 여론조사비용 5억 원 대납 사건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과 자격정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헌수 기조실장도 당연히 처벌받았다. 남재준 원장 시절 박근혜에게 보낸 6억 원 중 4억 원에 대해 업무상 횡령 방조죄가 적용되었다. 이병기 원장 시절 8억 원과 이병호 원장 시절 21억 원 제공에 대해서는 국고 손실죄로 처벌되었다. 이 실장 역시 다른 범죄들(재향경우회 특혜 제공과 안봉근 비서관에게 뇌물제공)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장도 회계관계직원으로 보아 더 높게 처벌된 측근 3인방
돈을 전달받는 역할을 하였던 박근혜의 측근 3인방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이들에 대해 재판을 한 법원은 국정원장도 회계관계직원으로 판단하여, 박근혜 재판과 국정원장 및 이헌수에 대한 재판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또 이병호 원장 시절인 2016년 9월에 제공한 2억 원도 뇌물로 보았다.
이재만 비서관은 남재준 재임 시절 5억 원과, 이병기 재임 시절의 8억 원, 이병호 재임 시절 19억 원, 총 32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다른 범죄사실(국정조사 증인 불출석 사건)과 합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 비서관의 경우에 남재준 시절 박근혜가 받은 6억 원 중 1억 원은 제외되었다. 이것은 처음 두 달동안에는 그가 전달한 봉투에 돈이 들어있었는지 몰랐다고 한 이재만 비서관의 말을 재판부가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안봉근 비서관의 경우에는, 남재준 원장 시절 6억 원, 이병기 원장 시절 8억 원, 이병호 원장 시절 19억 원, 총 33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 방조죄로, 이병호 원장 시절인 2016년 9월 2억 원을 추가로 전달한 것에 대해 뇌물수수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안 비서관도 다른 범죄들(이헌수 실장으로부터 뇌물 수수 및 국정조사 불출석)과 함께
징역 2년 6월과 벌금 1억 원, 추징금 13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병호 원장 시절 받은 돈 중 2억 원에 대해 다른 재판부들과 달리 뇌물죄로 처벌받았다.
끝으로 정호성 비서관도 이병호 원장 시절 2016년 9월에 전달된 2억 원에 대해 뇌물수수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 원이었다.
한편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이 그를 뇌물 수수죄로 기소하였지만, 법원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로 받았고 직무성 대가를 바라고 주고 받은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준 이병호 원장이나 돈을 주라고 요구한 박근혜 모두 횡령죄로 처벌되었다.
국정원장을 법적으로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것인가와 이병호 원장 시절에 보낸 돈 중에 2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는가 여부는 이제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에 따라 재판은 좀더 길어질 수도 있고, 처벌 형량도 바뀔 수 있다.
이 사건들에 대해 법원에서 인정한 범죄사실과 법률 적용 등을 자세히 알고자 하면, 이 재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된다.
박근혜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8고합20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2150 사건이다.
남재준과 이병기, 이병호 국정원장, 이헌수 기조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233, 2018고합118(병합)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1729 사건이다.
이재만과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173, 1247(병합), 2018고합43(병합)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2073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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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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