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입국.EU 회원국인 슬로베니아 입국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노시경
요새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슬로베니아를 찾기 때문인지 세관원은 대한민국 여권을 보자마자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그런데 우리 버스에 탔던 한 친구만이 세관에서 한참 동안 잡혀 있었다. 플리트비체에서 자그레브 가는 버스를 같이 탔던 말레이시아 여학생이었다.
아마도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이고 말레이시아 여행객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여학생도 마침내 버스로 돌아왔고 서로 안면이 있는 우리는 그냥 어색한 웃음만 나누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국경을 통과하면서 2시간이나 걸렸고 아내가 조금 힘들어했다.
슬로베니아 땅으로 들어서자 마치 서유럽에 온 것 같은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슬로베니아가 오스트리아의 오랜 지배를 받았고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 중 가장 먼저 독립해서 산업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4차로의 고속도로는 잘 닦여 있었고 가끔 흩날리는 빗줄기가 버스의 차창 밖을 때리고 있었다.
버스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 안으로 들어섰다. 도시 변두리의 낡고 퇴색한 건물들을 지나 시내로 들어서자 도심에는 잘 정돈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가르는 류블랴나차(Ljubljanica) 강 앞에 이르자, 다리 입구에서 두 날개를 편 청동 드래곤 4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이 드래곤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상상의 괴물로서, 류블랴나의 상징이다. 신화 속의 이아손(Iason)은 흑해 동쪽 끝에서 황금 양털을 구한 후, 아르고(Argo) 호 원정대 선원들과 도나우 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도나우 강 지류인 사바(Sava) 강과 류블랴나차 강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이아손은 류블랴나 근처의 호수에서 큰 괴물, 드래곤을 물리치고 현재의 류블랴나에 도시를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드래곤 상을 지나자 류블랴나차 강변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구시가의 바로크 스타일 건축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적절한 도시 규모가 은은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오랜 역사와 조화를 이루는 아르느보 스타일의 건축물도 현대예술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류블랴나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류블랴나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었다. 보통 도시 이름은 주변의 지형을 나타내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류블랴나'라는 이름은 슬라브어의 '사랑하다'라는 의미인 '류비티(Ljubiti)'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스러운' 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지어졌을까?
나는 분명히 이름에 과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사랑스러움이 크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류블랴나 도시 전체에 대한 첫인상은 사랑스럽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느낌은 이제 웬만하면 유럽의 도시에 감동하지 않는 아내의 '도시가 너무 예쁘다'는 표현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