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할머니의 냉수 한 그릇, 비슷하게 타 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우민정
그때부터 슈퍼 가기 귀찮을 때마다 "할머니, 그거, 그거" 하면 할머니는 바로 알아듣고 찬장에서 곱고 흰 설탕을 꺼내 물에 녹인 뒤 얼음을 한가득 넣어주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엄마가 와 하룻밤을 같이 자고 돌아갔다. 잠자리에서 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했다. "나는 아이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 구박했는데, 보니까 내가 사투리를 해서 못 알아듣는 거였어. 그걸 모르고 구박을 했으니 어찌나 미안한지." 나는 자는 척하며 그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그 말에 섭섭했던 내 마음이 풀렸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냉수가 생각난다. 그 맛을 오래 잊고 지내다가 몇 년 전 초등학교 앞에서 옛날 냉차를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200원인가를 주고 사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싶어 집에서 설탕물을 타 먹었는데도 영 그 맛이 안 났다. 아무리 화려한 애플망고빙수를 먹어도 그때 그 시원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아지며 할머니의 음식과도 멀어졌다. 갈 때마다 바리바리 싸주시는 반찬도 거절한 지 오래다. 그런데 요즘은 할머니가 해주던 꽈리고추볶음, 깻잎김치, 콩나물무침들이 가끔 떠오른다. 밭에서 바로 딴 배추, 고추, 상추와 된장 하나 올린 할머니 밥상. 그 단순함이 그립다. 온갖 값비싼 빙수의 홍수 속에서도 할머니가 타준 설탕물의 시원함을 잊지 못한다.
서운한 내 마음 달래주었듯 더위에 지친 나를 달래주던 그 시절 할머니의 냉수 한 그릇이 그립다. 올 여름 휴가 때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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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시원한 맛... 할머니가 타주던 마법의 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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