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인터뷰 당시 노회찬 전 의원.
비아북 제공
- 관객동원 1000만 명을 눈앞에 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봤나?
"개봉한 첫날 봤다. 봉 감독이 몇 년 전에 제 지역구에 와서 <설국열차> 얘기를 했다. 그때 영화 <마더> 직후에 와서 <마더>를 어떻게 해서 찍게 됐는지를 얘기한 뒤에 <설국열차> 얘기를 했다."
- 봉준호 감독과 진보정당이 워낙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고 노 대표도 개인적으로 잘 아니까 더욱 관심이 컸겠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봉 감독도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관계다. 또 마들연구소 명사 초청 특강에 박찬욱 감독에 이어 봉 감독이 와서 강연을 해줬다. 2년 전 일이다. 그때 자기가 다음 작품으로 <설국열차>를 할 거라고 얘기했다. 자기가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만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못 궁금했는데 이번에 <설국열차>를 보고 '역시 봉준호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 <설국열차>를 본 소감은 어떤가.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느니, 기록적인 관객동원이 이뤄졌다느니, 하는 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재밌는 영화다.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특히 제가 정치를 하다 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됐다. 거기도 보면 크게 두 개의 노선이 갈등한다. 그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싸워서 앞으로 나가자는 것이 주류 노선이다. 그런데 남궁민수(송강호분)는 아예 그 열차를 벗어나자고 한다. 열차를 벗어남으로써 모순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남궁민수는 계속 도는 열차 속에서 밖을 관찰한 결과 밖이 녹고 있었다. 즉 빙하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노선이다.
무력에 의존해 그 안에서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개량노선과,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혁명노선이 재밌게 설정된 구도였다. 점진적으로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판을 완전히 바꿔서 이 상황을 완전히 벗어날 것인가? 이런 문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개량이냐 혁명이냐'라는 대립구도와도 연결된다. 대개 보면 혁명은 무력을 동원하고 개량은 타협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싸우지 않으면, 즉 무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개량이 안되는 상황이다. (웃음) 그래서 그렇게 무력을 써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큰 비전이 없다. 그런 구도가 참 재밌었다."
- 저도 <설국열차>를 보고 '혁명이냐 개량이냐'라는 좀 진부한 화두를 떠올렸다. (웃음) 노 대표가 그 열차에 있었다면 어느 쪽에 섰을까?
"저는 남궁민수 노선이 맞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혁명을 했지만 유토피아로 간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억압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스웨덴이나 핀란드, 노르웨이가 인간성의 발현이나 민주주의 등의 측면에서 국가사회주의(러시아)가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까지 열어가고 있다고 본다. 물론 거기에도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모순이나 폐단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도식으로 보면 '혁명이냐 개량이냐'로 보이지만, 국가사회주의가 혁명적 언사로 가득 차 있기는 했지만 별로 나은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의 또다른 형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개량으로 폄하되었던 노선들이 지금 더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영화에서 소수가 지배하는 부당한 압제와 평등하지 못한 열차 속에서 싸우는 것 자체는 정당하지만, 그렇게 싸우고도 그 열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그 싸움에는 한계가 있다. 바퀴벌레 대신 다른 걸 먹는다거나, 물자를 좀 더 공평하게 배분하는 정도의 상황 개선은 있을지 몰라도, 계속 도는 열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궁민수가 문을 열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 아닌가? 자본주의의 모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정당한데, 어떤 노선과 방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그와 관련해 소비에트 방식은 좋은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조차도 가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북유럽) 노선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영화에서 '남궁민수의 노선'이 가장 혁명적이다.
"그렇다. 열차 안에서는 그것이 혁명이다."
문을 부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