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주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손님이 많은 조용한 카페였다. 그런데 이들이 등장하면 종이 신문을 펼치고 넘기는 소리가 카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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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카페에서 업무중임을 알게 된 건 백색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와 눈에 띄는 행동 때문이었다.
특히 중년 남성 두 명은 자주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각자 진행하던 일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였다. "지주가 자꾸 조건을 바꾼다"든지 "저축은행이 발을 빼려 한다"든지 하는. 공교롭게도 이들은 각자 어떤 부동산 개발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은 듯했다. 하는 일에도 공통점이 있었던 것.
재밌게도 이들은 얼마 전부터 한 테이블에 함께 앉기 시작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관계도 아니었는데 요즘은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하는 모습이다. 서로에게 지인도 소개한다. 그들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트워킹'이라는, 카페의 또 다른 기능을 보게 됐다.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한 사람들도 있다. 몇 달 전, 정확히 오전 아홉 시였다. 서로 떨어진 자리에서 노트북을 보던 두 남자가 거의 동시에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지른 것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왜 하한가로 던지는데?"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카페에 일찍 출근한다. 전기 콘센트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온종일 노트북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화장실에 가는 모습도 별로 못 봤다. 다들 혼자 조용하게 모니터만 들여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동이 있었다. 주식 거래를 하던 어떤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다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그리로 가서는 모니터를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자리 주인에게 들켰다. "왜, 남의 종목 훔쳐보는데?" 조용하던 카페가 잠시 시끄러웠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어떤 풍경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고 한다. 유목민이 가축을 데리고 좋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처럼 일정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옮겨 다니며 일을 하는 사람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일하는 사람들, 와이파이가 연결된 곳이 일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 카페다. 특히 본사가 직영하는 큰 매장만 있는 카페가 유독 인기가 많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필수인 콘센트와 와이파이 인심이 후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항상 있는 카페는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이지만 그곳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메뉴를 시키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카페 밖에서 텀블러에다 음료를 담아 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다른 손님이 반납한 컵을 자기 테이블에 갖다 놓는 사람도 봤다.
난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다. 언젠가 나도 글을 급하게 수정해야 해서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안 시키고 작업만 살짝 한 뒤 나온 적이 있다. 그때 옆자리 손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지금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음료를 안 시키거나 남의 컵을 들고 오는 사람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저렇게 무시하는 눈길로 바라봤겠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나와 같은 시간에 카페를 찾는 사람들을 다른 눈으로 보기로 했다. 내가 카페를 이용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카페에서 사업을 도모하든, 주식을 거래하든, 작품을 쓰든, 그들 모두에게 나름의 절박함이 있을 것이라고.
디지털 시대에 노마디즘을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