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속 ‘너’와 ‘나’는 단순한 구호 하나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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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초월, 신문방송! 우리는 미쳤다!"
더 이상 이런 집단문화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선배 앞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후배에게 강요하는 건 내 선에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문화를 끊어야 외톨이를 선택한 내 동기도 마음 편하게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그 후 우물쭈물하다가 곧은 자세로 자기 학번과 이름을 외치고 술잔을 들며 학과 구호를 외치는 후배들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내 옆에 있던 선배는 "네가 뭔데"라며 화를 냈고,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힘들게 버틴 신입생 시절이 가고, 드디어 선배가 된 시점에 외톨이를 자처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통 안 보이던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이거 군대 번호야. 잘 지내지?" 그는 내 안부를 물었다.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에 반갑게 응답하며 최근 있었던 학교 일을 모두 말해줬다. "네 생각 많이 나더라. 길에서 선배 만나면 피하고 지냈어. 나도 군대나 갈까? 넌 어떻게 버텼냐?"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그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윤아, 군대 오니까 더 심하더라. 그냥 버텨"
20대 초반. 그 친구와 나는 이상한 집단주의에 그냥 버티고 지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군에 입대해서 그 친구는 쓰러지고 만 것일까? 그는 나에게 왜 전화를 했을까? 전화기 너머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 잠시만이라도 차가운 '집단의 공기'를 피하려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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