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와 맞선 상인들서울상인연합회, 한국마트협회 등 중소상인 자영업자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제품 판매 중단 확대 기자회견을 열고 붉은 엑스 표를 한 아베 일본 총리의 사진을 들고 있다.
이희훈
역사 자체를 모르는 일본인이라. 그러니 강제징용과 관련된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흥분하고, 남북한 정상들이 만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할 수밖에. 결국 이번 사태는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시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점령국 미국이 공산주의의 남하를 막기 위해 패전국 일본을 아시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면서 비극이 잉태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짜 문제긴 하네요. 그럼 일본인들은 미국을 싫어하나요? 어쨌든 점령군이었는데."
"일본이 먼저 공격한 것은 알아요. 그러니 싫어하진 않죠. 그리고 해방국 미국은 일본을 특별히 대우했잖아요. 전쟁책임도 묻지 않기로 하고. 한국보다 훨씬 대우가 좋았어요. 다만 요즘 불안한 것은 언제나 일본 편이었던 미국이 이번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요."
재일조선인의 바람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슬슬 재일조선인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야 무역전쟁의 당사자로서 일본 제품 안 쓰고, 일본 여행을 가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어찌 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외국인으로서 아직까지 공공연하게 차별받고 있는 그들인데 이번 한일 무역전쟁이 그들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바람은 한국이 굽히지 말고 끝까지 지금 노선을 지켜주는 것이에요."
"우리요?"
"재일조선인이요."
"그럼 재일조선인이 힘들어지지 않아요?"
"많이 힘들지요. 그런데 이제까지 편한 적 없었으니까요. 일본사람인 척하면서 사는 것은 더 힘들어요."
짠했다. 한국인도, 북조선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는 재일조선인. 우리는 한동안 그들을 북한의 앞잡이, 간첩의 본산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들은 한국을 같은 핏줄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어쩌면 지금의 한일 무역전쟁은 재일조선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건일지 모른다. 이번 분쟁 자체가 일본이 강제징용이라는 그들의 과거를 부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바, 이는 오랫동안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서 겪어왔던 갖은 차별과 수모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의식 부재와 그에 따른 우경화. 이번 무역전쟁이 경제를 넘어 역사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지인이 내게 남긴 당부를 언급해본다.
"일본계 미국인이 제작한 영화 <주전장>이 이제 곧 서울에서 개봉된답니다. 한국과 일본의 현황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꼭 봤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