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타프로바나
김선흥
왼쪽은 15세기 말까지 서양의 지배적인 세계상으로 군림했던 프톨레미 지도의 인도 부분(개념도)이고 오른쪽은 당시 이슬람의 그것에 해당된다. 둘 다 인도를 식별하기 어렵다. 우드워드에 의하면 15세기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지도로 평가 받는 프라 마우로(Fra Mauro)지도에서도 인도가 잘 식별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 한다. 요컨대 강리도에서 늘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돼 온 인도마저도 이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우수성이 잘 드러난다.
참고로 위 지도에 보이는 거대한 섬(Taprobana)은 2세기의 프톨레미가 <지오그라피>에서 처음 묘사한 이래로 오랫동안 서양과 이슬람 지도에 나타난다. 실론 혹은 보르네오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제 아프리카를 둘러 싸고 있는 해역에 주목해 보자. 당시 동서양의 어떤 지도도 강리도처럼 아프리카가 넓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그린 걸 찾아 볼 수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의 지도들은 지표에서 차지하는 육지의 비중을 바다보다 훨씬 높게 잡았다. 선진적인 이슬람 지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슬람 지도에서 오직 하나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11세기 알 비루니(al Biruni, 973~1050)의 세계상이다.
알 비루니는 페르시아 출신으로 중세 이슬람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이슬람 황금시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 두 사람을 꼽을 때 이븐 시나(Ibn Sina)와 함께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대학자로서 특히 천문학, 수학, 지리학, 역사(특히 인도 역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경위도를 측정했고 투영법을 고안했다. 무엇보다도 지도에서 프톨레미 지리학의 전통을 탈피하여 인도양을 획기적으로 개방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소개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비판정신의 소유자였다. 고대 그리스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인도 과학이론에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 뭐니뭐니 해도 후세에 가장 잘 전수된 것은 지표상의 육지와 바다의 분포에 대한 그의 과학적 이론이었다. (...) 알 비루니의 지도학에 대한 직접적인 공헌은 지표상의 수륙 분포를 보여주는 세계 개념도이다. 그것은 1238년에 필사된 <점설술의 원리>에 실려 있는데 알 비루니의 독자적인 세계상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이슬람 지도 표준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아프리카의 육지가 동방으로 뻗어 있다는 프톨레미의 유산을 탈피하여 인도양이 남반부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듯한 세계상을 제시했다." -<지도의 역사> 이슬람편
지표상 땅과 바다의 분포비율에 있어서 알 비루니는 당대에 유일무이의 독창성을 보였다. 강리도가 또한 그러하다. 두 지도가 비록 시간적으로 300년 이상의 차이가 있지만 연동되어 있을 거라는 강한 암시를 받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알 브루니의 세계상 스케치만 가지고는 맥락을 이어볼 수 없다. 알 비루니의 다른 지도는 없는 것일까? 나는 애써 찾아보았다. 필시 있을 것 같은데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하나를 찾아 낼 수 있었다. S. Frederic Starr의 <상실된 지혜>(Lost Enlightenment, 2013)라는 책 속에 알 브루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지도 이미지 하나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