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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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일단의 급진파 청교도들이 레이덴에 도착했다. 청교도들은 신앙생활에 열중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 했다. 당시 레이덴은 직물산업이 번성하면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 미만한 곳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자본주의와 물적 타락은 동전의 양면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착취 구조도 그들이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권력의 망치를 피하고 보니 물신 지배의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점차 나태해지고 무엇보다 2세들의 사고가 오염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탄압이 나았다. 신앙이라는 쇠는 맞을수록 단단해지지만 자본주의라는 타락의 용광로에 있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린다. 그들은 순수한 신대륙에 가서 신앙공동체를 구축하면서 지상천국을 건설하자고 맘먹었다. 레이덴으로 이주한 지 십일 년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에는 헨리 허드슨의 신대륙 발견 소식이 발단이 되었다. 그들이 막 레이덴에 도착하던 해(1609년), 탐험가 허드슨은 일본ㆍ중국으로 가는 북동항로를 찾기 위한 4차 항해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와 계약했다. 허드슨은 일본으로 가는 지름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북극해를 방랑하다가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날 뉴욕 주에 해당하는 신대륙을 만났다.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태평양과 만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강폭은 좁아지고 내륙으로 판명되었다. 그래도 강 이름 하나는 제 이름으로 남겼으니 개인적으론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끝내 일본으로 가는 뱃길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돌아오는 길에 영국에 정박했다가 신대륙에 관한 정보를 유출시키지 않으려는 영국 정부의 방해로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허드슨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지도와 항해 정보만 따로 보내고 자신은 영국에 남았다. 덕분에 네덜란드 사람들도 북위 40도 쯤에 광활한 신대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620년, 존 카버를 지도자로 삼은 일백여 명의 레이덴 청교도들이 짐을 쌌다. 그들은 운하를 따라 로테르담의 델프스하벤 항으로 이동하고는 스피드웰호를 타고 영국의 사우샘프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큰 배 '메이플라워' 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메사추세스의 케이프코드에 도착한다.
항해가 지연되는 바람에 겨울에 도착한 그들은 땅이 얼어 개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봄이 올 때까지 배에서 생활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의 생활을 규약하고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정할 서약서를 작성한다. 이를 '메이플라워 서약'이라고 하는데, 자치와 민주와 평등의 원리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