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재보선 서울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
권우성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와 2014년의 대담을 다시 들어보자.
구영식 : 게다가 최근 복지국가 담론이 제기되면서 당시 그런 전략이 많이 대중화됐다.
노회찬 :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나는 이 느낌을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거의 비슷하게 보고 있다. 전두환 체제하에서는 노동자라는 말만 해도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다시 쳐다봤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비밀결사체를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랬던 사람들이 6월항쟁 이후 석 달 만에 수천 건의 파업을 일으키면서 스스로 일어섰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얘기하면 빨갱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정치권보다 대중이 그것을 더 빠르게 소화하고, 흡수하고, 요구할 정도로 변했다. 내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갔을 때 가장 센 무상보육 공약을 내세웠다. 만 4세까지 완전 무상보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명숙 민주당 후보하고도 달랐고,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는 우리 공약이 황당무계하다며 텔레비전 토론에서 나와 설전을 벌였다. 그것이 2010년인데, 불과 2년 후인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무상보육 공약은 당시 내가 내세운 것보다 더 셌다. 만 5세 완전 무상보육을 내놓은 것이다.(주석 4)
노회찬의 주위에는 이념과 색깔을 넘어 여러 직종,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특별한 발광체(發光體)가 아닌데도 개성 있는 인물들이 그와 가까이 한 것은 자신들은 하지 못한 일을 그가 하고 있다는 대리보상심리거나, 그의 다양한 취미, 포근한 인품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