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나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도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어느 섬에서 벌어진 인권 탄압의 현장을 가공한 이야기로만 알았고, 그 현장이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곳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재했던 소록도라는 걸 알게 된 건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도 아주 오랜 뒤였다. (사진은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표지)
문학과지성사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엔 계란을 팔러 다니던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가 파는 계란이 속칭 '문둥이 마을'에서 나오는 거였다. 아저씨와 계란을 경계하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에, 어린 나는 계란을 파는 아저씨와 '문둥이 마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대체 산동네 깊은 곳에 있다는 '문둥이 마을'은 어디이며, '문둥이'란 누구를 이르는 것일까.
어릴 적 영화 제목은 기억에 없지만, 예수가 나환자들에게 세례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후드를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드러나는 몸의 대부분은 천으로 감싸고 있었다. 이들을 금기시하는 이유가 이들이 싸매고 감추고 있는 곳의 음험함 때문이라고 막연히 짐작했던 것 같다.
대체 사람들이 왜 저들을 두려워 하느냐는 내 질문에, '문둥병' 때문이라는 답을 엄마였는지 아버지였는지에게서 들었다. 한센병이 '무섭고 나쁜 병'이라는 왜곡된 원형을 가지게 된 시작이었다.
20대 때 나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도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어느 섬에서 벌어진 인권 탄압의 현장을 가공한 이야기로만 알았고, 그 현장이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곳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재했던 소록도라는 걸 알게 된 건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도 아주 오랜 뒤였다. 내게 소록도와 한센병은 그렇게 비가시화돼 있었다.
가족여행으로 순천만을 가보기로 하고 하루는 고흥에 가보기로 작정하자, 소록도가 떠올랐다. 굳이 '다크 투어리즘'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근대 장애인사>를 읽다, 어릴 적 한센병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길어올려졌기 때문일 텐데, 부끄럽고 미안했기 때문이리라.
소록도에 들어서자 남편은 어릴 적 기억을 꺼내 놓았다. 어렸을 때 한센인들을 직접 보았다는 남편은 한센인들을 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다. 왜 그들을 만나게 됐는지는 잊었지만, 어린아이의 간을 꺼내 먹는다는 둥 온갖 괴담의 주인공들인 한센인들을 대면했던 장면은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고 했다.
그 시절 기억에 멈춰 있던 남편은 황당하게도 여전히 한센병이 유전 된다고 믿고 있었다. 나와 딸이 그렇지 않다고, 바로 그 부분이 한센인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수단이 됐다고 강하게 반박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의 믿음이 무너진 건 소록도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부터다. 한센병이 아직도 유전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남편뿐일까.
소록도 곳곳에 스며 있는 한센인들의 아픔
다리(소록대교)가 놓여 배를 이용하지 않고도 소록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소록도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감금된 한센인들에게는 어땠을까. 수탄장(월 1회 한센병 환자가 가족을 면회하던 곳)에 들어서는데 소록도 탐방을 하는 한 무리의 방문객들과 마주쳤다. 소록도 해설사가 설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날이 더우니 평소보다 간략히 설명하겠노라고 했다. 은근슬쩍 무리에 끼어들어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