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 속 책. 수준을 다른 숨은그림찾기 책. 가운데 책은 지난 가을 20대 딸과 재미붙여 했던 시리즈이기도 하다. 큰 글씨 책이 없다는 서점 직원의 말에 우선 떠올랐던 것은 한국단편소설집. 그러나 대부분 글씨들이 작고 엄마가 어쩌면 이해못할 단어나 표현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큰 글씨 책만큼 글씨가 크진 않지만 일반 단행본들보다 큰 데다가 중학교 교과서 소설인만큼 내용과 표현도 어느 정도 쉽고 순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택했다. 읽어주면 좋아하신다.
김현자
친정아버지는 구십을 넘던 몇 년 전까지 책을 읽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껜 그간 책을 자주 선물했다. 지역의 다양한 직책을 맡아 일하시는가 하면, 이런저런 친목모임도 많아 바쁜 아버지였다. 하지만 엄마는 기껏해야 하루 몇 시간 마을회관에서 어울려 노는 것이 유일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지 전화해 보면 집에서 TV를 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혼자 남은 엄마의 노후가 더 걱정됐다. '엄마가 좀 더 젊었을 때 재미 붙여 읽을 책 한 권 하나 왜 선물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단 생각에 후회됐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됐다. 내용은 같지만, 책 크기나 글씨가 30%가량 큰, 노년층을 위해 출간되는 '큰 글씨' 책이 있다는 것을(대략,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노트 크기다. 글씨는 16폰트 정도로 30% 가량 비싸다).
큰 글씨 책의 존재를 알기 전인 지난해 여름부터 노인 인구가 크게 늘고 있는 만큼 글씨 크기는 물론 나이 든 분들을 주요 독자로 하는 내용의 책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큰 글씨 책이 실제로 출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작은 설렘까지 일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막상 고르려니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그림이어야 하고,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단순해선 안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직접 가서 보고 골라야 하는데 시간이 쉽게 나지 않았다. 게다가 막상 엄마가 좋아하실 만하다고 고른 책이 내 진심과 다르게 엄마를 무시하는 결과를 만들면 어쩌나 망설이기도 했다.
큰 글씨 책도 직접 보고 사야 한다 생각했다. 글씨 크기는 물론 내용도 살펴보고 사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늘 뭔가를 읽으셨던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어쩌다 간혹 불경이나 고전소설을 읽는 정도였고, 그것도 기억에 그리 많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책과 낯가림이 어느 정도 있을 엄마가 무엇보다 재미를 붙여 읽을 만한 내용이어야 했다.
엄마의 생신을 며칠 앞둔 2월 중순 어느날 동네서점이라지만 규모가 꽤 큰, 그래서 지난 십여 년 동안 단골로 드나들었던 동네서점에 갔다. 글씨 크기와 책 크기 등, 큰 글씨 책 자체가 궁금해서 간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큰 글씨 책이 아예 없었다.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비치하지 않았다"는 직원의 대답에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할 수 없이 다른 책을 사다 드렸다. 그런데 큰 글씨 책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되었다. 1999년 겨울, 영어공부를 시작한 아버지와 함께 한자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한때 공부에 열정을 보이기도 했던 엄마시니, 이제라도 신경 쓴다면 얼마든지 책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딸인 내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책을 권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대형서점에서 '큰 글씨' 책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