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위원장 경선 거부한 황영철 의원자유한국당 황영철(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의원이 5일 오전 한국당 몫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후보 선출을 위해 열린 의원총회 도중 나와 "이번 (예결특위 위원장) 경선을 수용할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밝히고 나왔다"며 "상임위원장 선출 등을 위한 합의와 신뢰성을 훼손시키는 선례를 만드는 당사자가 될 생각이 없어 경선을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다.
남소연
"하아…."
황영철 자유한국당(아래 한국당) 의원(강원 홍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이 한숨을 쉰 뒤 입술을 깨물었다. 황 의원은 잠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위) 위원장 후보자 선출을 위한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경선 포기를 선언하고 나온 직후였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황 의원은 격앙된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듯 입술을 떨었다.
한국당은 5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새 예결위원장 후보자로 김재원 의원(경북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을 선출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을 보이며 당내 분란을 그대로 노출했다.
황영철 공개 발언 막아선 한국당 원내지도부
예결위원장은 원래 황영철 의원 몫인 것처럼 보였다.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이 있었던 2018년 초, 황 의원은 안상수 의원과 1년씩 예결위원장을 돌아가며 맡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황 의원은 지난 3월 예결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국회법은 예결위원과 위원장 임기를 5월 말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파행을 겪는 동안 예결위는 전체회의 한 번 열지 못했다. 황 의원은 예결위원장 자리에 이름만 올린 채 임기가 끝나버린 셈이다.
협상대로라면 황 의원이 예결위원장 자리를 그대로 승계해 '1년씩' 맡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김재원 의원이 경선을 요구하며 나섰다. 지난 원 구성 협상 당시 당원권 정지로 인해 논의 자체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김 의원은 국고손실 및 뇌물혐의로 기소되어 당원권이 정지되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오면서 징계가 해제됐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황 의원의 의원직 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황 의원은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황 의원 역시 대법원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한국당 지도부는 경선을 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비박 복당파'인 황 의원보다 '친박 잔류파' 김 의원을 예결위원장으로 두는 게 대여투쟁에 더 유리하다는 지도부의 속내도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이에 황 의원은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지난해 의원총회에서 추인된 문제를 뒤집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라며 "경선 참여 여부를 포함해 거취를 고심하고 있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황 의원은 5일 오전 의원총회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문 앞에서 입장하는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선거운동'을 펼쳤으나, 황 의원은 총회장 안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몇몇 의원은 "왜 선거운동을 하지 않느냐" "괜찮느냐"라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원내지도부가 사전 회의로 인하여 의원총회장에 조금 늦게 입장하면서 애초 8시 30분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의원총회는 8시 50분께가 되어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현아 원내부대표는 관례에 따라 상임위원장 선출 의원총회는 시작부터 비공개라는 점을 공지했다. 그러자 황 의원이 손을 들고 일어나 공개 발언을 신청했다.
황영철 의원의 공개 발언 허용 여부를 두고 설전이 오갔다. 황 의원은 "언론인들 앞에서 공개 발언 할 수 있게 해달라"라며 "의원이 언론인들에게 공개 발언하겠다는데 왜 막느냐"라고 항의했다. 주변에서도 몇몇 의원들이 "그냥 하게 해줘라" "왜 의원의 공개 발언도 못하게 하느냐"라고 힘을 보탰다. 공교롭게도 모두 '비박'으로 꼽히는 의원들의 반응이었다.
나경원 원내대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이 잠시 논의를 하는 듯 했으나, 관례를 이유로 비공개 진행을 강행했다. 일단 비공개로 후보자 선출을 마친 뒤 공개회의로 전환하여 발언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 의원은 후보자 선출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할 말이 있다며, 의원총회장 앞까지 내려와 공개 발언 의지를 피력했다.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관행을 좀 지켜달라" "당을 위한 자세가 아니다"라고 황 의원의 항의를 막아섰다. 황 의원은 "당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들어보면 아시지 않느냐"라고 맞섰다. 이에 공개발언을 허용하라는 의원들과 반대하는 의원들이 앉은 자리에서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비공개 하기로 했으면 빨리 비공개하라" "개판이다 개판"이라며 공개 발언 반대 목소리를 더했다.
결국 김현아 원내부대표는 황 의원의 발언을 무시한 채 국민의례 식순으로 넘어갔다. 황 의원은 무언가 말을 더 하려다가 얼굴을 굳힌 채 그만두었다.
황영철 "나경원, 측근 예결위원장 앉히려고 해"
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전환된 지 조금 시간이 지난 후, 황 의원은 의원총회장을 빠져나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신상발언을 통해서 이번 경선을 수용할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나왔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지금 나경원 원내대표가, 그 측근을 예결위원장에 앉히기 위해서 당이 줄곧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과 민주적 가치들을 훼손했다"라며 "이번에 일어난 사례는 향후 한국당이 원내 경선을 통한 상임위원장 임명 등 여러 합의 사항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시키는 대단히 잘못된 조치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 의원은 "저는 이 선례를 만드는 데 당사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라며 "그래서 저는 경선을 거부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앞둔 자신의 처지를 경선의 이유로 밝히는 김재원 의원 및 친박계 의원들을 향해 "동료 의원을 밀어내기 위해서 가장 추악하고 악의적으로 사안을 왜곡시켜서, 자신들의 출마이유를 발표했다"라며 "이건 같은 당 의원 동료에게 할 수 없는 매우 저질스럽고 추악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내년도 출마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제 정치인생 마지막 순간을 당당하고 소신 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다"라며 "싸우는 형식, 기술, 자세는 달라도 올바르게 당의 입장을 견지하고 국민이 원하는 예산을 세울 수 있는 예결위원장이 되고 싶었는데 무산됐다"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는 탈당이 아니라 잔류를 선택했다. 그는 "어제는 집에 가지 못했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의원회관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라며 "어려운 시점, 가혹한 시기에 가장 담대하고 품격 있게 이걸 마무리할 수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도 했다"라고 토로했다.
황 의원은 "저는 저를 밀어내고 있는 현 원내지도부 생각하면 더 이상 이 사람들과 같이 해야될 이유가 없다"라면서도 "그러나 지금 우리 당에는 저를 밀어내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가슴 아프게 공감해주고, 도와주려고 했던 또 그런 의원들이 계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는 그런 의원들과 떨어질 수 없다"라며 "저를 사랑해주셨던 의원들과 헤어질 수는 없을 것 같다"라며 탈당은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그는 "끝으로 당에 요구한다"라며 몇 마디 말을 더했다. "더 이상 우리 당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우롱하는 그런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이런 국회의원들, 단호하게 조치를 내려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런 조치들이 내려지지 않으면, 아마도 우리는, 제대로 된 보수로서 한발자국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라며 "이 또한 강력하게 싸워나가겠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나경원 "원칙대로" 주장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