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 영화는 1986년 홍콩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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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IMF 금융위기를 목전에 두고 영화 주제곡인 <첨밀밀>뿐 아니라 여명이 꽤 인기를 누렸다. 급속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이요처럼 어떤 여성들은 뛰어난 수완과 재주로 일정 부분 성 역할을 전복한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최대 역량을 발휘할수록, 여성에게 경제적 몰락은 더 빨리 도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 소군처럼 순박한 남성이 결국 곁에 남을 것이라는 상상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사랑의 효능을 믿는 것은 세기말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이기도 했다. 누구나 근대적 개인으로 로맨스의 주체가 되리라는 것이 당대의 정언명제(定言命題)였다.
낯선 목소리들의 익숙한 멜로디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 '반송중(反送中), 중국으로의 송환을 반대합니다'시위로 돌아오면, 실제 우려되는 것이 반 중국 인사에 대한 탄압이라고 했다. 이는 2024년까지 보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제대로 시행하라는 2014년 우산혁명의 주장을 잇는다. 또한 2015년 대만에서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을 졸속으로 통과시키는 데 반대했던 해바라기 운동과도 공명한다.
이처럼 최근 동아시아의 대중시위는 한국의 촛불 시위까지 포함해 청년들이 중심이다. 이들은 세대 재생산을 위한 일국가적 인구정책의 타깃이 아니라, 국가와 경합하는 시민으로 초국적 주체가 되려고 한다. 단지 이성애 연애에 기반한 정상 결혼과 자녀 출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체성을 가진 정치적 개인으로 살아갈 것인지 자문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의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질수록, 국경을 넘는 연대의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1980년 한국 5·18 민주화운동에 등장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2019년 홍콩에서 불린 이유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몇 년 전 <첨밀밀>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보인다. 바로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 홍콩의 청년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이때 주목받는 인물이 바로 소군의 고모이다. 그는 홍콩이 가장 화려했을 시기, 미국 영화배우 윌리엄 홀덴과 나눴던 단 한 번의 식사 자리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평생 허풍과 거짓말로 여겨진다. 평생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서구문화를 동경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작은 집에서 눈 감는다. 이 여성이 바로 소멸해가는 존재로서 홍콩을 비유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금 인구 7백만 중 1백만이 훌쩍 넘는 인파가 쏟아져 나온 홍콩의 광장을 목도한다. 시위대 중 많은 이들은 10대를 포함한 젊은 층이다. <영웅본색>(1986)에서 흑사회(黑社會)가 지배하던 홍콩의 어두운 골목은 <첨밀밀>에서 금융자본이 유통되는 환한 거리가 됐다. 이제 골목과 거리, 그리고 광장에서 이 청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이 익숙한 멜로디에 얹힌 낯선 목소리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탈/식민과 신냉전이 교차하는 복잡한 동아시아의 장에서 어떤 노래를 같이 부를지,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