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30대 남성이 5월 3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경우 경찰은 피의자 조아무개(30)씨에 대해 주거침입 혐의만을 적용했다가 여론이 들끓자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후 검찰도 조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 했으며, 오는 11일에 열릴 첫 재판에서 법원이 주거침입 혐의 외에도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계속해서 문을 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하면서 피해자에게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준 행위는 강간죄 실행의 착수에 해당하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일각에선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향후에 어떤 범행을 저지를 줄 알고 혐의를 특정하느냐'는 것이다. CCTV만으로는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견과 '집 앞까지 따라간 것은 호감의 표현' '미래를 예측해서 범인을 검거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생각난다'는 반응도 있다.
이쯤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남성이 여성을 뒤따라오는 것이나 여성의 집 안으로 들어오려 시도하는 것은 모두 성폭력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사건의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며 성폭력이 성을 매개로 한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가해 행위임을 고려하면 시도에 그쳤다고 할지라도 극도의 공포심을 자극한 행위 역시 성폭력임이 더욱 명백해진다.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의 안전을 바라지 않더라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얼굴 없는 남자 사건을 겪고 내가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그만하길 다행이다'였다. 룸메이트와 나는 범인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각자 흩어져서 이사까지 했지만 많은 이들이 강간이 아닌 피해를 다행으로 단정 지었다. 이 말은 '그러니까 어서 결혼을 하라'는 충고나 '술을 마시고 늦게 다닌 것 아니냐' '한국은 치안이 좋은 편이다' 등과 얼마나 다른가? 모두 남성 폭력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았거나 불안에 떠는 여성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위험하니까 어서 결혼하라'는 충고는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일부' 얼굴 없는 남자들과 그들과 다른 대다수의 선량한 남자의 상관관계를 암시한다. 그레이엄과에드나 롤링스, 로버타 릭스비가 함께 쓴 <여자는 인질이다(Loving to survive)>는 가부장제가 남성 폭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여자는 남성 폭력에서 보호받기 위해 남자에게 기대게 된다. 남자가 자기를 보호하기만 하면 다른 무슨 짓을 하건 그 남자는 친절한 남자가 된다. 폭력의 가능성은 계속 따라다니기 때문에 여자는 계속 옆에 있어 줄 친절한 남자를 찾는다. 많은 여자가, 어쩌면 여자 대부분이 보호가 필요해서 결혼한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을 계기로 여론이 들끓기 전에는 숱하게 벌어진 위협과 폭력을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고 한다. 나에게 극심한 공포를 가한 젊은 남자와 노인 역시 처벌받지 않았다. 어쩌면 이 사회는 여성의 안전을 바라지 않는 게 아닐까?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는 여성이 어느 정도 위험에 처하길, 남성으로부터 위협받고 공포에 떨기를 바라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공포를 조장하고 다른 한 편은 공포심을 이용해서 여성을 통치하고 이득을 취하는 것. 이 메커니즘은 조직 폭력배에게 갈취 당하는 상인을 지켜주는 명목으로 자릿세를 받아가는 또 다른 폭력배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만약 모든 여성이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이 독립적인 여성들의 다음 목표는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나는 예전보다 안전한 곳에서 살고 호신술도 배운다. 하지만 여전히 문 밖에서 나는 소음에 신경이 곤두서고 인터넷에서 이중 자물쇠를 검색한다.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를 잊기는 쉽지 않다. 대다수의 여성이 기도라도 올리는 심정으로 나에게만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이 안전한 삶을 살게 되면 그 순기능은 뿌리 깊은 강간 문화의 소멸, 가부장제 타파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스토킹과 뒤쫓는 행위, 주거 침입의 공포를 가하는 시도에 대해 엄벌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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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를 썼습니다.
한겨레ESC '오늘하루운동', 오마이뉴스 '한 솔로', 여성신문 '운동사이' 연재 중입니다. 노는 거 다음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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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 내 방에 침입한 남자... 그날 이후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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