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나는 남편 없이 안달루시아의 열기 속에, 까딸루냐의 유흥 안에, 지중해의 햇살 아래, 토스카나의 풍미 속에, 그리고 에펠탑의 불빛 곁에 머물렀다.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남긴 76일간의 자발적 별거였다.
한해린
지난해 여름, 나는 남편 없이 안달루시아의 열기 속에, 까딸루냐의 유흥 안에, 지중해의 햇살 아래, 토스카나의 풍미 속에, 그리고 에펠탑의 불빛 곁에 머물렀다. 서로 떨어져 있던 그 76일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결혼생활에 새로운 변주를 넣어 더욱 다채로운 관점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발단은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파리에 있는 동생이 한국에 함께 왔던 프랑스 청년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비혼을 자처하던 동생이었기에 우리 가족 모두 놀람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당장 휴가 계획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조급한 내 마음과 달리 회사는 내 휴가를 수용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부장님은 나에게 단 5일을 제안했다. 매년 2주 정도의 연차를 붙여 유럽에 다녀왔는데 하필 동생의 결혼식에서 일정을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
"여보, 오래 버텼어. 그만하면 최선을 다 한 거야. 이참에 회사 그만두고,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오면 어때? 장인장모님도 가실 테니 함께 여행도 좀 하고. 유럽 무비자 체류기간이 90일이던가? 그거 꽉 채워서 다녀와."
솔직히 솔깃했다. 하지만 곧바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둘이 벌다 혼자 버는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돈을 많이 써도 되는 걸까. 그 기간 동안 남편은 잘 지낼 수 있을까. 시어머니는 반대하시지 않을까.
"퇴직금 있잖아. 그거 다 쓰고 와도 상관없어.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길게 가보겠어. 물론 다음에 또 기회가 올 수도 있지. 하지만 30대에 느끼는 것과 40대, 50대에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거야. 나는 여보가 나중에 지금을 떠올렸을 때 30대에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로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런 일을 만들어두면 1년이라도 더 오래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살 수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 엄마에게는 내가 잘 얘기할게. 사실 난 이게 우리엄마의 허락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나는 그 길로 퇴사 절차를 밟고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남편과 함께 출발해서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여행하고, 동생 결혼식이 열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했다가, 끝나면 부모님과 스위스 여행을 한다. 여기서 2주간의 휴가가 끝난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포르투갈, 스페인 남부, 프랑스 남부를 40여 일 동안 돌아본다. 그 뒤 홀로 남아 이태리에서 친구를 만나고, 파리로 돌아와 남은 한 달을 지내는 것으로 윤곽이 잡혔다.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