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북미술관무주읍 최북미술관 전경
이윤옥
붓으로 생업을 잇는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가진 최북은 북(北)자를 나누어 칠칠(七七)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직업화가로 꽃과 풀, 새와 짐승, 바위, 고목, 메추라기와 호랑나비를 특히 잘 그려 최메추라기, 최산수(崔山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최북은 술을 좋아했으며 괴팍한 성격으로 숱한 기행과 일화를 간직한 화가이기도 하다.
순조 때 재상을 지낸 남공철(1760~1840)이 지은 <금릉집>의 최북 전기를 보면 최북은 주량이 하루 5~6되씩 되었으며 술을 마시고 취하면 광기와 호기를 부려 '주광화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남공철 기록에는 "칠칠(최북)은 술을 좋아해 책 나부랭이 등을 모두 술값으로 주어 버려 살림이 어려웠다. 칠칠은 결국 평양과 동래로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팔게 되었다. 두 도시 사람들이 비단을 가지고 문지방이 닳도록 줄을 이어 섰다. 어떤 사람이 산수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더니,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괴상히 여겨 따지자, 칠칠이 붓을 던지고 일어서며 '이 종이의 여백은 모두 물이다'"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