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아프면 어떻게 되는 걸까?
pixabay
최근 지인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았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병원에 갔다. 지인의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월 200만 원가량을 벌던 아버지가 일을 못 하게 되니 집안이 휘청였다. 유일한 자녀인 지인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고, 매달 학자금과 월세로 수입의 60%가 나갔다.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부모님 살림을 도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남은 아버지의 퇴직금은 병원비로 쓰고도 모자랐다. 실비보험이 없었다면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해 곧 이사도 가야 한다. 어머니가 급하게 일을 구하고 있으나 60대 여성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아파서 일 못 하는 사람 위한 복지 제도는 없을까
"그럭저럭 산다 생각했는데 아프니까 순식간에 극빈곤층이 됐다"는 지인의 말이 남 말 같지 않다. 당장 부모님이 아프시면 나 또한 대책이 없다. 부모님뿐이겠는가. 당장 내가 아파 일을 못하면 월세를 못 내 길에 나앉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복지 제도는 없을까. 지인에게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무작정 인터넷을 찾아봤다.
찾아보니 심근경색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사례가 보였다. 하지만 권하기가 어려웠다. 가뜩이나 복잡한 일들로 머리가 아플 텐데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산재 신청하라고 말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일에 한동안 매달렸다가 불승인을 받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가. 한국에서 산재보험은 왜 신청조차 망설여질까 답답해 할 시간도 없었다. 당장 도움 받을 무언가가 절실했다. 좀 더 찾아보니 '질병수당', '상병수당'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이거는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되면 그냥 주는 건가?' 상병수당.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었다. 찾아보니 상병수당은 업무상 질병이 아니더라도 아파서 일을 못 할 때 그 기간만큼의 소득을 현금 수당으로 보전해주는 제도였다. 이런 수당이 있다면 지인의 가족은 한시름 놓을 것이다. 아버지는 충분히 재활할 시간을, 어머니는 일자리를 구할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문구를 보며 다시 좌절했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에도 상병수당의 도입 규정이 명시돼 있으나 거의 사문화 된 상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994년 상병수당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을 건강보험을 실시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하기도 했단다. 결국 지인의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는 건 흔히 실업급여라고 말하는 구직급여뿐이었다. 구직급여를 받으려면 아프더라도 당장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떠올랐다. 주인공인 59세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사지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상병수당을 받지 못한다. 영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이후 기준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구직급여라도 받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이력서를 돌리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의 극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