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대통령의 DMZ 방문을 보도한 1993년 7월 12일자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
트럼프의 연설은 1993년 7월 11일 승용차 편으로 DMZ를 방문한 빌 클린턴과도 명확히 대조된다. 제1차 북미 핵위기가 '전쟁을 불사할 듯한 위기 국면'에서 '대화를 모색하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뒤인 그날, 클린턴은 군사분계선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는 다른 것으로도 위협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3년 7월 13일 치 <경향신문>에 따르면, 건장한 해병대 대원이 핵가방으로 추정되는 검정색 가방을 들고 클린턴 옆에 서 있었다. 북한을 상대로 언제라도 핵전쟁을 개시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퍼포먼스였다.
트럼프의 연설은, '악의 축'이니 '불량국가'니 하면서 북한을 몰아세웠던 조지 부시와도 확연히 대비된다. 2002년 2월 20일 DMZ를 찾은 부시는 레이건이나 클린턴과 비교할 때 발언 강도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몸짓은 달랐다.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그는 명확히 표출했다.
2002년 2월 21일 치 <한겨레신문>은 부시가 DMZ에서 "그들은 역시 악"이라는 말을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래 인용문의 '이렇게 말했다'는 '그들은 역시 악'이라는 부시의 말을 지칭한다.
"20일 오후 비무장지대 최전방 초소를 찾아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진저리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군 지휘관으로부터 '북한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군 2명을 살해한 도끼를 건너편에 있는 북쪽 평화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진저리난다며 머리를 흔든 조지 부시와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의 팔을 토닥거리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의 DMZ 행보는 2012년 3월 25일의 버락 오바마와도 달랐다. 그날 오바마는 DMZ에서 다소 교과서적인 어록을 남겼다. 최전방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북한을 관찰한 오바마는 "자유와 번영이 남북한만큼 극명하게 대조되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여러분은 자유의 최전선에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록을 남긴 것이다.
트럼프는 레이건을 보면서 대통령의 꿈을 품었을 뿐 아니라 레이건 재임기에 실제로 출마를 시도하기도 했다. 레이건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는 1987년에 '도널드 트럼프를 뽑아주자(draft Donald Trump)'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공화당원도 있었고, 조지 부시 부통령(아버지 부시)의 러닝메이트 후보 중 하나로 트럼프가 고려됐다는 말도 있었다.
만약 트럼프가 레이건의 뒤를 이어 1989년에 43세 나이로 대통령이 되고 그 상태에서 DMZ를 방문했다면, 그 역시 레이건·클린턴·부시·오바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남기기 쉬웠을 것이다. DMZ에서 어떤 말을 하는가는, 미국 대통령 개인의 소신이나 특성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만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시대 상황에 구속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자신의 신념과 개성을 담아 DMZ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와 세계질서가 새로운 단계를 향해 '월북' 혹은 '월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6월 마지막 날 트럼프가 보여준 파격 행보들이 머지않아 새로운 시대의 일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5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