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탄생(우피치 미술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앞부분을 표현한 그림이다.
박기철
아리스토텔레스 vs. 에피쿠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는 원동자(元動者, the Prime Mover)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사물을 최초로 움직이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힘을 말하는데 기독교의 창조주와 정확히 일치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동물이 다른 존재라고 선을 그었다. 이 역시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모든 생물을 다스린다는 기독교 교리와 연결되었다.
반면에 에피쿠로스 철학은 그야말로 신성 모독이었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쾌락주의 철학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는 쾌락이라고 하면 다소 질 낮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주장한 쾌락은 현재의 삶 자체에서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에피쿠로스 학파 공동체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철학의 근간에는 원자론이 있다.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쪼개질 수 없는 씨앗, 즉 원자(atom)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물은 원자들의 결합과 해체로 순환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상의 고귀한 존재라고 했던 태양은 물론이고 인간과 동물 그리고 돌멩이까지도 모두 똑같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들과 같다니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에피쿠로스에게 생명의 탄생은 원자의 결합이고, 죽음은 원자의 해체였다. 우리가 죽으면 몸의 원자들은 해체되어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형태로 재결합한다. 그래서 사후 세계는 없으며,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온다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나 부활 역시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여러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성체변화설(빵과 포도주가 축복을 받으면 진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을 부정한 갈릴레오의 주장도 원자론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갈릴레오 종교재판의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조르다노 브루노 역시 무한 우주론을 주장하며 인간만이 유일하다는 교리에 맞섰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의 대립은 시간이 흘러도 이어졌다. 데카르트에게 동물은 그저 '움직이는 기계(Machina Animata)'였고, 울음소리는 작동 중 발생한 오류일 뿐이었다. 이에 대해 밀란 쿤테라는 이렇게 비판한다.
'신이 정말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길 바랐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인간이 암소와 말로부터 탈취한 권력을 신성화하기 위해 신을 발명했다고 하는 것이 더 개연성 있다.(밀란 쿤테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옮김, 민음사, 472쪽)'
신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에피쿠로스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은 그들끼리 모여 자기들만의 쾌락을 추구할 뿐 인간 때문에 분노하거나 기뻐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신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신의 노여움을 풀고 사랑을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와 의식은 불필요한 것이다. 신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쾌락주의 철학이다. 하지만 교회 입장에서 이것은 무신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에피쿠로스에게는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높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 하지만 고대인이 남긴 수많은 유무형의 유산을 파괴했던 교회는 고대 사상을 부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쾌락이 아닌 고통을 신성시했는데, 이는 예수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