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Monk brewing가장 오래된 수도사 양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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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313년 밀라노 칙령이 있기까지 로마에서 탄압받던 종교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이후 로마의 국교로 인정된 기독교에서 맥주는 성경에서조차 한마디도 언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가 기적을 일으킨 건 와인이었지만, 중세 암흑기 시절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을 준 건 맥주였다. 특히 기독교의 수호자이자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수도원은 맥주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문자를 몰랐던 일반인과 달리 수도사는 기록을 통해 맥주 양조기술을 발전, 전승했으며 이를 통해 수준 높은 맥주를 양조할 수 있었다. 수도원은 구휼기관으로서 신분의 귀천 없이 맥주를 나눠주었으며 주 수입원으로서 맥주를 양조했다. 로마인이 그토록 무시했던 맥주는 그들이 한때 그토록 탄압했던 기독교를 통해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기적을 일으켰던 것이다.
어지럽던 중세를 정리하고 새로운 도약의 시기로 이끈 이는 '샤를마뉴'(또는 카롤루스) 대왕이었다. 9세기 초반, 정복을 통해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거의 회복한 '프랑크 제국'의 왕, 샤를마뉴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받게 된다. 샤를마뉴 대왕은 누구보다 맥주를 사랑한 사람으로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훌륭한 맥주 양조를 독려했다. 과거 로마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게르마니아 혈통인 샤를마뉴 대왕이 서로마 제국의 뒤를 잇게 되고, 야만족들의 '소울 음료'(soul beverage)였던 맥주가 마침내 유럽을 대표하는 술로 올라서는 순간이 온 것이다.
중세시대 맥주는 평범한 이들이 사랑하고 즐기는 음료로 성장하게 된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식수보다 안전했던 맥주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신분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음료가 되었으며 공동체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고된 하루의 일상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로마시대 건설되었던 도로는 타번(tavern)과 펍(pub)을 발전시켰다. 맥주를 그토록 무시했던 로마가 남긴 유산을 통해 맥주는 인류의 벗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21세기 현재, 맥주는 그 어떤 술보다 전세계 어느 곳에나 즐길 수 있는 음료다. 남미의 마추피추, 미국의 알래스카,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맥주가 사랑받지 않는 곳은 찾기 힘들다. 이는 수천 년 동안 맥주가 우리의 친구로서 존재해온 근원적인 가치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 동안 힘들고 고통받던 시기를 버텼던 맥주가 하루하루 고달픈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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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서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며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맥주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한국맥주문화협회를 만들어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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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하고 야만스러워" 로마는 왜 맥주를 무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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