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ortrait in a Fur Coat(1500)알브레히트 뒤러 Source: Wikimedia Commons
Alte Pinakothek, 뮌헨
기존의 자화상들과는 달리 검은 배경에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뒤러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며 종교적인 신실함을 가진 크리스천이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자신을 경건히 하고 그 가르침을 평생 간직하겠다는 신념을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구원자이자 통치자인 예수의 모습을 차용한 것에 대해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신념과 그림에 대한 자신의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화가에게 있어 세상을 보는 눈과 더불어 2차원의 표면에 옮기는 테크닉을 보유한 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나타내려는 듯 뒤러의 오른쪽 눈에는 창문 빗장이 그려져 있다. 화가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 또는 세상을 담아내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유독 길고 가느다란 그의 오른손 또한 시선을 끈다. 세상을 지도하고 복을 주는 그리스도의 손 모양이 흔히 강조되듯, 뒤러는 자신이 본 바를 자신의 창의성과 결합하여 2차원의 표면에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실질적 도구로 강조했다.
그림의 왼쪽에는 그림을 그린 연도와 서명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나의 모습을 그렸다'(Albertus Durerus Noricus ipsum me propriis sic effingebam coloribus aetatis anno XXVIII)라고 적었다. 이러한 설명은 그림을 그린 자신의 태도와 방법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바탕으로 최대한 닮게, 색의 표현도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게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금의 거울을 생각하면 닮게 그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고개가 갸우뚱하겠지만, 당시 거울은 작은 크기의 볼록 거울밖에 없었다. 평평한 거울은 기술적으로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볼록한 거울에 왜곡되어 나타난 자신의 모습과 역시나 변형되어 나타난 색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뒤러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했다.
뒤러에게 있어 화가란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의 질서, 아름다움, 신념, 사상을 창의성과 기술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연은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우주적인 질서와 수학적 비율, 조화로운 형태, 찬란한 색채로 이루어진 내재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무질서하고 우연적이며 혼돈스러워 보이는 자연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 섭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량과 수치와 무게로 배열한다"는 성서외전의 하나인 '솔로몬의 지혜'(잠언 11:20)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에게는 이 세상의 존재가 온갖 신비와 심층적인 의미,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었다.
흔히 예술가의 고민과 음울함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는 뒤러의 동판 인쇄 작품 '멜랑콜리아 I(Melancholia I, 1514)'는 그 어느 작품보다 많은 해석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 작품은 1513년과 1514년 사이에 만들어진 뒤러의 3대 동판화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인간의 성품과 특징을 표현한 그림 중 우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분명 세상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비에 대한 예술가의 깊은 고민을 표현한 것으로 여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