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꽃알로카시아 꽃을 처음에 보면 별 이상하게 생긴 꽃이 다 있구나 싶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낯설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유려한 곡선 모양의 포와 작은 꽃방망이가 신비롭다. 꽃방망이 윗부분이 수꽃이고, 아래쪽 부분이 암꽃이다. 시들면 초콜릿 색으로 변한다.
김이진
봄에 들인 알로카시아는 초겨울까지 베란다에서 무탈하게 잘 자랐다. 알로카시아는 열대 식물이기 때문에 겨울 추위에 약하다. 베란다에서 어느 정도 적응기가 끝났을 거라 판단했고, 겨울 냉해도 피하고 습도 조절을 할 겸 방으로 옮겼다. 알로카시아는 몸에 있는 습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기질이 있어 가습 효과가 있다. 잎에 물방울이 또르르 맺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 알로카시아와 한방에서 지내는 건 즐거웠다. 자연이 주는 위로가 포근했다. 건조하지 않을까 싶어 물을 평소보다 자주 주면서 살폈다. 아무래도 빛이 모자라서 줄기가 약하고 잎이 맥아리 없었지만, 그럭저럭 잘 견뎌 주었다.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봄이 왔다. 베란다로 다시 옮겨주려고 알로카시아 몸통을 잡고, 화분을 끙끙거리며 들었다. 그런데 알로카시아 몸통이 푹 주저 않는다. 목대가 푸시시 꺾어져 버린 것이다. 두 동강이 났다. 목대에서는 물인지, 진물인지 새어나왔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인가. 너무 놀랐다.
'무름병'이었다. 말 그대로 물이 많아 물러지는 증상이다. 식물은 물을 자주 주면 탈이 난다. 넘치는 물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거리다가 죽어간 것이다. 미안했다. 뒤늦게 무름병에 대해 찾아보니 뿌리를 다시 심으면 개체가 돋아난다고 한다. 그때는 그런 정보를 몰랐다. 남아 있는 애정을 거둬들이지 못해서 알로카시아를 다시 들였고, 정다운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예전에는 알로카시아가 정말 핫한 식물이었다. 화양연화 시절이었다. 인테리어 좀 했다는 카페나 호텔에 가면 어김없이 알로카시아를 만나곤 했다. 인테리어 잡지나 매체에서 공간 연출 팁으로 소개한 것도 한몫했다. 노출 시멘트 화기에 커다란 알로카시아를 식재해 포인트를 주는 것에 아주 재미가 들었다. 특별한 비법이 필요하지 않고 심어 놓기만 해도 저절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지금은 그 인기가 사그러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이야 여전히 좋아하지만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식물 트렌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상당히 민감한 편이어서 늘 기본으로 나오는 식물은 여전하지만 몇 해 지나면 농장에 출하되는 식물이 싸악 바뀔 정도로 변화한다. 뭐든지 오랜 시간 노출이 되고 눈에 익으면 희소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알로카시아는 언젠가 또 유행이 오지 않을까.
도시에서 키운 미적 감각이 초라해지는 순간
알로카시아에 관한 '웃픈' 사연이 하나 있다. 나는 봄이 되면 엄마한테 예쁜 꽃 모종을 선물하곤 했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어릴 적에 화초를 가꾸던 엄마 모습이 그리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생활에 찌든 엄마가 화분을 키우면서 꽃이 피어나는 걸 예뻐하고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엄마는 내가 건네는 꽃화분들을 보고 "아이고야, 고맙다" 웃었지만 왠지 그리 열심히 가꾸는 기색이 아니었다. 번짓수가 잘못됐나 싶어 고운 빛깔의 서양란을 선물하니 정말 좋아했다.
우리는 시골 할머니들이 키우는 꽃과 식물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진분홍색의 영산홍이며 집집마다 거의 키우다시피하는 군자란, 불긋불긋한 꽃을 피우는 선인장(특히 게발선인장), 선명한 색감의 서양란, 텔레비전 옆에 꼭 하나씩 짱박혀 있는 산세베리아 등. 내가 엄마한테 꽃화분을 선물한 것도 그런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호기롭게 알로카시아를 선물했다. 이정도 희소성 있는 매력이면 엄마가 좋아하려니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동네사람들이 알로카시아를 보고 한마디 했단다.
"오메나~! 집안에다 왜 토란을 키운대."
도시에서 키운 미적 감각이란 게 이토록 초라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늘 가까이 하는 시골 감각에 맥도 못춘 사건이었다. 그 한 마디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해마다 피어나는 사과꽃이며 살구꽃, 배꽃, 도라지꽃, 채소꽃, 지천에 널린 들꽃을 보고 지내는 시골 사람들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익숙한 것이고, 도시 사람들이 흔히 촌스럽다고 하는 꽃화분들이 특별한 것이었다.
알로카시아는 토란이랑 오십보 백보였다. 나는 급겸손해졌다. 그 뒤로 더는 엄마한테 함부로 화분을 선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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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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