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권우성
"이재용 부회장이 감옥 갔을 때 삼성전자 주가는 더 올랐습니다. 재벌개혁은 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기업 살리기예요."
그는 여러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기자가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경제지표가 나빠지면서 '삼성 그만 때리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고 하자 그는 답답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삼성 총수일가가 세습 문제로 기업을 얼마나 망쳐놨나, 이걸 지적하는 게 기업 때리기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재벌체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 말기나 그 다음 정부 때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 동안 해외전문기관에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곧 끝난다고 예측했는데, 국내 정치인들은 오로지 삼성과 SK 쪽 말만 듣고 낙관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정부도) 너무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최근에도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데 오는 3~4분기에 반전될 거라 얘기한다,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 교수는 오랜 기간 재벌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1960년대 이후 유지돼온 정부주도·재벌중심의 박정희 개발체제로는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재벌을 중심으로 관료·정치인·언론인·교수·법조인 등 기득권 카르텔이 형성되면서 이런 체제가 바뀌지 않는 것"이라며 "(2017년) 촛불시위가 이를 바꿀 수 있는 계기였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촛불시민들의 바람을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가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다시 한번 경고했다.
지난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을 찾아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삼성전자 주가
- 재벌개혁을 여전히 '대기업 때리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언론이 사람들을 혼돈스럽게 한 부분이 있는데 대기업과 재벌, 재벌총수를 동일하게 보도록 한 것이다. 삼성그룹 이야기는 삼성전자 얘기처럼 해 버리고, 이재용 이야기는 삼성전자 얘기처럼 했다. 총수일가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말을 언론이 기업 때리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건 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기업 살리기다.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 오히려 총수일가의 잘못으로 기업이 흔들리는 사례가 많았다.
"한진을 보라. 대한항공을 누가 죽였나. 아시아나항공을 누가 죽였는가. 재벌들의 권력이 통제되지 않으니 황제경영도 일어나고, 사익 편취도 아무 때나 발생한다. 그런 것들이 멀쩡한 기업을 죽였지 않나. 재벌개혁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자는 것인데, 기업 살리기다. 삼성전자 주가를 결정하는 것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지, 이재용이 감옥에 가고 안 가고가 아니었다."
- '재벌단위 경제블록화'로 우리 경제 제조업이 위기에 빠졌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정부가 살아남은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을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기업의 독과점이 고착화됐다. 제일 좋은 예가 자동차다. 현대차-기아차가 합병하면서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의 70%를 점유했다. 독과점이다. 현대차가 하청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재벌이 돈 되는 건 직접하고, 친인척한테 시키고, 아들들에게 나눠줬다. 그게 1차 하청이다. 2차 하청도 대부분 끈으로 됐다. 하나의 블록이 생긴 거다."
- 블록 안에 들어가지 못한 기업은 힘들어졌다.
"그런 기업 입장에선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재벌블록 안에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비교해 보니 블록 안에 있는 기업이 더 잘 됐다고 해서 '재벌이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예를 들어 어떤 독재국가에서 독재자의 며느리가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자. 그 며느리에게 잘 보인 기업이 뭔가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기회가 없어 못 먹고 산다. 그래서 독재자 며느리가 잘하고, 독재가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렇게 비교하면 안 된다."
재벌개혁으로 노인빈곤, 사회양극화 해결
-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다. 또 블록 안에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원청이 하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청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가 일어나는 거다. 현대차가 지금까지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단가 후려치기다. 이건 원청 노동자가 아니라 1·2차 하청노동자를 착취한 것이다. 이렇게 잘 나가던 현대차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중국 같은 나라가 따라오면서 가격경쟁력을 잃게 됐다. 그런데도 하청업체들은 여전히 제품을 싸게 만드는 경쟁에만 매몰돼 있다. 여기서 혁신이 어떻게 일어나나."
자동차산업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탈수직계열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1·2차 하청기업들이 모두 독립하면서 그 사이에서 경쟁이 일어나고, 원청은 하청 가운데 기술력이 뛰어난 곳을 고르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자동차도 발전돼 있고, 전자도 발전돼 있지만 전장(차량 전기·전자장비)은 그렇지 않다"며 "블록화가 돼 있어 (삼성-현대 등 기업들의) 융합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전기차가 떠오르니 현대차는 경쟁력을 잃게 됐다"며 "부품을 모두 외국에서 가져오는데, 그 거래비용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 현대차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건가.
"최근 제가 현대차 쪽 사람을 만났는데, '하청관계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됐는데'라면서 후회하더라. 현대차는 연구개발(R&D) 투자를 토요타의 2분의 1, 폭스바겐의 3분의 1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니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단가 후려치기로 1·2차 하청기업들의 수익률도 떨어졌다. 임금격차의 근본 원인이다. 현대차의 몫이 100이면 1차 하청은 60, 2차 하청은 30 수준이다. 임금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재벌블록화 체제가 유지되는 이상 깨기 어렵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없어질 문제가 아니다."
- 재벌개혁으로 사회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나.
"대기업들은 단가 후려치기로 돈을 버니 인적 자본이 축적된 50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들을 자르고 더 젊고 월급이 싼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50대가 조기퇴직하고, 자영업을 하고, 3년 만에 망하면서 노인 빈곤으로 빠진다. 정부는 이를 재정으로 메워준다. 이런 악순환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 물론 연금이나 노동·재정문제도 같이 풀어나가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재벌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한국의 경제·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어정쩡한 규제가 불러온 참사